삶의 흔적

과거는 흘러간것이 아니다 .....

조합대표 2013. 1. 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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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다 제 풀에 지치겠지 뭐. 기획실 친구들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고 하더라구.”

“파일에 저장 다 돼있는데 어려울 게 뭐 있나. 제목만 조금 바꾸면 새 계획 만드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누가 회사 생활 더 오래하는지 생각해 보자구. 사장은 운 좋아야 2,3년 하는 거 아냐?”

“바뀔 때 마다 기대는 해 보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지. 똑 같은 일 하면서 다른 것이라고 우겨봐야 달라지는 게 있나?”

대통령 선거 해면 나라 전체가 들뜨는 것처럼 주총시즌이 되면 직장 사회도 술렁인다.

그러나 새 사장을 맞고 한달 정도가 지나면 어김없이 이런 대화들이 직원들 술상의 안주거리가 된다. 알맹이는 바뀌지 않고 껍데기만 바뀐다는 냉소가 주류다. 더구나 경기침체로 새 사장의 역할이 사람 줄이고 임금 깍는 ‘악역’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경영진 교체는 더 이상 즐거운 일도, 기대되는 이벤트도 못되는 시절이다.

당신이 이번 시즌에 사장이 된다고 상상해보자 (아직 20년이 남은 분들도 이 코너에선 이 가정을 따라 함께 가보자). CEO로 우뚝서면 당신의 흥분지수는 인생에서 최고조에 있게 될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가슴 조이는 레이스에서 당신은 승리했다. 그래서 경쟁자들은 저멀리 사라졌고 당신은 정상에 있다. 회사의 행,불행이 당신 손에 달려있다.

당신이 주연인 인생극장은 기, 승, 전, 결 가운데 절반을 지나 이제 전(轉) 단계다. 정점을 뜻하는 클라이막스다. 이곳에서의 대승부를 끝으로 당신의 직업 인생은 아름다운 종지부이건, 비참한 마침표이건 곧 찍게 된다.

연극이나 영화나 문학 작품이나 클라이막스에선 뭔가 자극적이고 새롭고 놀랄만한 장치가 필요하다. 관객이나 독자들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이 직업 인생의 정점에서 승부수를 띄우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행태일 것이다. 모험을 거는 것도 이해할만한 논리적 결론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앞당겨 말하면, 이 클라이막스는 당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직원들은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별 기대가 없다. 실망시키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당신 스스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 모른다.

승진한 당신만 흥분 상태일 뿐, 회사의 다른 모든 사원들은 연례행사처럼, 자주 있는 일처럼 하루 하루를 맞고 있을 수도 있다. 새 경영진의 의욕과 보통 사원들의 의욕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당신의 그 의욕을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 끝에 마침내 경영자가 돼 인생의 정점에 있는 것은 당신 뿐이다.

직원들은 고작해야 인플레만큼 오른 급여에 한숨 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승진 기회가 있거나 급여가 오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주 즐거운 일이 아닌 한, 당신이 신나서 하는 일이 직원들에겐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차이를 냉정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경영자들은 직원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의외로 많은 경영자들이 임기 초기에 과욕을 부린다. 시장을 한번에 장악할 획기적인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는 한, 과욕은 과욕 만큼의 비용을 치르게 돼있다.

자부심이 강한 경영자일수록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과거 부정’이다. 경영자들은 자신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않았던 시절의 성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잘못된 경영 판단에 대해서도 자신의 책임으로 느끼려 하지 않는다. 그 심리가 과거 부정이라는 행태를 낳는다.

진용재편을 이유로 사람을 대폭 갈아치우고 거래선, 납품업체,그리고 유통망도 ‘돈이 더 되는’ 곳으로 바꾸려 하고, 전략이나 비전도 직전 사장 시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다시 짠다. 이런 드라이브 아래에선 방향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덮어버리는’ 프로젝트가 부지기수다. “처음부터 재검토해야 하는” 기존 사업들이 늘어난다.

새 사장의 이런 드라이브는 일견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 보인다. “말씀대로 하니 이렇게 좋아졌습니다”하는 식의 아부성 보고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사장은 “회사가 바뀌고 있다”고 더 흥분하게 된다. 주위에는 새로 승진한 사람, 새로 간부가 된 사람 등 흥분지수가 사장 만큼이나 높은 사람들이 득실하니 반대 의견은 듣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 효과는 좀처럼 숫자나 돈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기업들을 관찰한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행태는 수없이 반복된다. 마치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개혁’드라이브가 걸리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전시적인 경영이 많은 회사일수록 실제 성과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훨씬 많았다. 필자는 그 원인으로 직원들의 심정적인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싶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좋아보이긴 한다. 그러나 실제 일이 이뤄지는 장소를 보자. 기업에서의 과거는 누가 만든 것인가? 누가 해오고 있는 것인가? 바로 지금의 직원들이다. 과거 부정은 직원들에게 ‘자기 부정’을 강요하는 셈이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은 엉터리다. 그러니 내가 제대로 된 것을 알려주마. 그러나 그것도 너희들이 해야 한다”

이런 모순적인 명제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고” “예전 보고서 글짜 고쳐서 새로 만들고”하면서 시간 떼우는 직원들이 늘게 돼있다. 과거는 부정되지 않고 수정되고 새로운 것처럼 포장될 뿐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번째로, 직원들이 한동안 잘 해오던 일을 중단하게 됨으로써 의욕을 잃는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언제 사장이 바뀌면 또 다른 걸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경험칙이 요령만 늘게 한다.

두번째로, 그때까지 회사에 쌓인 노하우는 송두리째 날아간다. 실패에서 배운다는 건 말뿐이다. 실패는 반성되지 않고 묻혀진다. 모험은 다시 감행되고 유사한 시행착오가 반복된다.

세번째로, 회사 외부 파트너나 거래선에 신뢰를 잃는다. 관여했던 여러 회사들은 사업계획이 중단 되면서 모두 적으로 돌아선다.

네번째로, 인력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획통이나 엔지니어들은 다른 회사에서 유사한 일을 계속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경영자에게 청산 대상으로 보이는 바로 그 과거는 직원들에게는 자신의 땀을 받쳐온 ‘역사’일수도 있다. 그를 통해 쌓아온 인맥도 있고 사회적 네트워크도 있다. 그런 것들이 송두리째 부정되면 직원들의 마음은 떠날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옮길 곳이 없어 떠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전직의 탈출구는 이미 열렸다.

그러니 당신이 사장이 된다면 처음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다. 비슷한 일 같지만 전혀 다른 접근법을 요한다. 과거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작업은 누가 주도하는가?

그 과거를 지금까지 만들어온 바로 그 직원들이다. 지도자가 바뀌어도 해오던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사실만큼 직원들을 안심시키는 것은 없다. 사장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비즈니스는 외부 거래선을 안심시켜 회사 신용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과거를 부정하게 되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러나 시장이 그대로 이고, 경쟁자가 그대로 인데 새롭게 찾을 것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결국 같은 일을 다른 방식으로 할 뿐이다. 그보안 직전 경영자가 해 온 일 가운에 괜찮은 일을 골라내 벽돌 하나를 더 쌓겠다는 역사 의식이 필요하다.

물론 잘못된 과거는 청산해야 한다. 밑빠진 독 신세가 된 과오투자는 즉시 중단시켜야 옳다. 역량이 모자란 사람이 앉아 회사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과거이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됐기 때문에 고치는 것이다.

과거는 흘러가지 않았다. 당신 보다 덜 흥분하고 있는, 매양 그곳에 있어온 사원들이 이제까지 쌓아온 것이다. 당신도 사장이 되기 직전까지 그 속에 있었다. 이 ‘과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의 명제는 더 높은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직장사회에서의 과거란 직원들의 경험, 시행착오, 노하우 바로 요즘 모두들 중시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지식’의 다른 이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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