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정말 잘 아는 여성이 세 명 있다. 이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나를 두고 ‘사랑 쟁탈전’을 벌이는 세 여인. 바로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이다.

이들 여인들이 자기를 두고 사랑 쟁탈전을 벌인다는 건 어쩌면 남자들만이 하는 착각인지도 모른다. 실제 이들 세 여인은 아들,남편, 혹은 아빠를 꼼짝 못하게 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아홉살짜리 우리 딸만 하더라도 20년 애연가였던 아빠를 금연 대열에 동참케 한 주인공이다. 매일 저녁 금연 포스터를 들고방에 들어와, 설득과 협박으로 ‘시위’하는 그녀를 설득하는 것이 담배 안피우는 것 보다 어려웠다.

갑돌이가 평범한 이름이라고 한다면 조선 시대를 통털어 수많은 갑돌이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건 없었건 조선의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최소한 그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이순신 혹은 인조임금 또는 대원군 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역사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지 못했다면,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지 않았다면 또는 대원군이 쇄국정책 대신 개화정책을 썼다면… 역사엔 가정이 통하지 않겠지만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뜻에서건 역사에 영향을 준 인물이 있었다. 아니 그런 인물들로 역사는 메워진다.

개인의 역사라고 다를 것이 있으랴. 개인의 삶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은 반 친구로, 동네 친구로 스치듯 지나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있으나 없으나 당신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분명 있다. 이순신 혹은 대원군 같은 위치로 당신에게 큰 변화를 준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그들과 만난 흔적이 바로 당신의 역사다.

사기꾼을 친구로 알고 잘 못 사귀다 빈털털이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운좋게도 필생의 스승을 만나 나락에서 건져올려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영향력이 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당신 인생의 지남철이 이리 저리 돌려진다. 우리가 이왕이면 긍정적인 영향력이 넘치는 사람과 교류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의 ‘세 여인’으로 돌아가자. 이들은 특히 끊임없이 영향력을 미치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에서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결정짓는 중요변수다. 그런데 이 가운데 실제로 내가 고를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딱 한 사람, 바로 아내 뿐이다.

남자들 가운데 결혼을 전환점으로 인생의 내리 오르막이 바뀌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직장 생활에 관한 한, 결혼전까지 남자들은 아마추어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추어가 프로 수준이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바로 제대로 된 코치나 감독이다. 선수의 장단점을 찾아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키워주는 사람이다.

성공한 남자 뒤에는 여인이 있다. 세 여인 일수도 있고, 한 여인 일수도 있다. 인생의 코치, 직업의 감독으로서의 어머니, 아내, 혹은 딸. 대부분의 경우 그 여인은 바로 아내다. 여러발 양보해도 이렇게는 말해야 옳다. “남자의 성공은 아내와의 합작품이다.”

직장 사회에서의 경쟁이 심화될 수록, 개인주의 경향이 확산될 수록 아내의 이런 코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도 못보는 것이 있다. 바로 게임의 흐름이다. 또 적의 속마음도 읽어내기 어렵다. 막아내기 바쁘고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코치는 한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흐름을 읽어낸다. 그 흐름 속에서 적의 의도도 끄집어낸다. 그걸 바탕으로 이기기 위해, 승리하기 위해 우리팀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찾아내는 것이다. 이건 경기장에서 앞만 보고 싸우는 선수로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것이다.

한발짝 떨어진 위치에 서서 전체를 파악하는 이런 능력은 논리적 분석의 결과라기 보다는 직관(intuition)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에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 말이다.

직관에 관한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뛰어난 것 같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성향이 강한 남자들에 비해 여성들은 그 속마음까지 읽어낸다. 행간을 읽고 무대 뒷편의 얘기를 정확히 꼬집어내는 것도 여자들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는 점도 여성들이 갖는 특장점이다. 아이들 교육비와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하는 결정은 주로 부인들이 한다. 필자는 출세한 남자들을 많이 만난 편이다. 필자는 그 뒤에 게임을 읽는 코치로서, 무료 카운셀러로서, 방법적인 비판자로서 그들의 부인이 있음을 항상 확인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코치들이 집안에만 머물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직접 나서기 보다는 아들을 통해서, 남편을 통해서, 아빠를 통해서 대리만족해 온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이글을 읽는 당신 같은 젊은 여성들의 노력으로 앞으로는 눈에 띄게 개선될 것이다.

경제기자로 일하면서 경제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 여성들을 적잖이 만났다. 어쩜 지금 당신도 그것 비슷한 걸 갖고 있을지 모른다. 경제, 경영 등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는 것은 좋다. 그런 결핍감이 당신이 스스로 노력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기초가 부족하다”는 건 지나친 자기 비하다. 당신은 기초가 있다. 그것도 아주 든든한 기초가 있다. 바로 전체를 파악하는 직관이라는 본능적 감각말이다. 코치로서의 전체를 볼 줄 아는 능력, 속마음까지 읽어내는 투시력 등은 경제 용어나 회계 상식 보다 훨씬 값지고 유용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당신을 쓰고 안쓰고는 회사의 선택이요, 회사의 복일 뿐이다. 그러나 회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정하느냐 안하느냐는 당신에게 달렸다. 영향력은 지위가 높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류관순, 전태일은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고 노동자였다.

그러니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 앞에서 용기를 잃지 말자.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앞에 나서보자. 회사를 위한 명분이 있다면 고집도 부려보자. 당신의 어머니가 아빠, 남편, 혹은 아들을 위해서 그래오셨듯 말이다. 당신이 이제 직장 사회에서도 영향력이 큰 사람, 남을 바꾸는 사람, 그래서 그리운 사람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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