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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취업전문 회사에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여론 조사를 했더니 가장 꺼리는 직업으로 영업을 꼽았다고 합니다. ‘오라는 곳은 없는데 가야 하는 것’이 영업이니 참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한다는 말은 딱 영업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영업은 마치 맹수가 사냥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아 한번 터득하면 평생 재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 유명한 병법가인 손자는, 장수가 나가서 전쟁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마케팅이요 영업이 아닐까 합니다.

근래 <30세, 영업본부장 신화>라는 책을 냈고 <석세스파트너> 3월호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이희구 지오영 회장은 영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으며, 깊은 감동을 주더군요.

국어교사 출신으로 더 넒은 세상에서 꿈을 펼쳐보기 위해 제약회사 말단 영업 사원으로 들어갔던 그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오늘날 제약 유통업계의 신기록 제조기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30대 초반에 대웅제약 영업을 총괄하는 영업본부장이 되었고, 그 후 창업하여 국내 최대 제약유통업체인 지오영의 CEO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라틴 댄스 등이 동호회를 중심으로 유행인데, 춤을 잘 추는 사람의 공통점은 ‘몸치’라고 하더군요. 가슴은 뜨거운데 남보다 배우는 데 소질이 없다보니 더 열심히 하고 더 공을 들이고, 끝까지 해내어 ‘고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입사원 교육에서 그는 42명 가운데 42등을 했습니다. 문과대학을 나온 그에겐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괜찮은 집안에서 자랐으나 작은 어머니를 둔 아버지로 인해 청소년 시절 큰 방황을 겪었고 단지 선생 노릇밖에 해본 게 없었으므로 영업을 잘 할만한 아무런 소양과 자세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그가 처음 취직한 S제약은 약국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아 무척 고생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수금하기 위해 약속한 날 약국을 찾아갔는데 화투를 치던 직원들이 재수없게 오밤중에 수금 온다고 천원짜리 3장을 그 앞에 홱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수금하려고 그 약국에 열 두 번 째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성을 잃어 주먹다짐을 했고 고향의 아버지가 올라와 겨우 합의를 봤습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인천 누나 집에 찾아간 그는, 언제나 그를 따듯하게 감싸주던 누나로부터 정신을 못 차린다고 호된 꾸지럼을 받아야 했습니다.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다시 시작할 기회는 많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바닥도 없으니,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천 앞바다에서 눈물을 뿌린 그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기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청소’였습니다. 동네에서 이태리 타월을 몇 개 산 그는 약국만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유리창을 닦고 약품 상자를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5분에서 10분 정도 재빨리 청소하고 다른 약국으로 갔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에 약사들은 처음엔 당황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쉬지 않고 약국을 찾아 다니며 청소만 했습니다. 걸레질도 하고, 형광등도 갈아주고, 쓰레기도 버렸습니다. 영업 사원들은 보통 하루에 열 다섯 군데를 도는데 그는 당시 무려 예순 군데를 돌았고, 발이 흉칙한 기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하면서, ‘수금을 꼭 해 와야 한다’, ‘거래처를 개척해야 한다’라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약국을 찾아갈 때 제철 과일과 채소를 손에 들고 갔고, 한번 방문하기로 약속했으면 폭풍우가 쏟아져도 찾아갔으며, 인부들을 부리면서 약국 확장 공사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약사들의 친구이자 해결사가 되어 주었다.

영업이란 이렇게 하는 것같습니다. 꼭 물건을 팔려고 가면 서로 얼마나 부담스럽습니까. 그러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기 위해 가고 고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간다면 서로 친밀감을 느끼고 마음이 통하게 됩니다. 영업 실적은 자연스럽게 오르는 것이죠. 그는 얼마 후 S약품 전국 영업 사원 300명 가운데 최고가 되었습니다. 서울 영업소장 시절엔 종로와 남대문의 대형 약국을 주름잡았고, 대웅제약에 스카우트되었을 땐 두 달 만에 전국 1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사기꾼에게 속아 매트킬러 3억 원어치를 납품하고 돈을 떼인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로선 엄청난 돈이었고, 그는 책임을 지고 회사에 배상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웅제약 윤영환 회장은 오히려 그를 격려해주었습니다. 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몇 년 후 그는 동부약품이라는 도매업체를 인수하며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야전 침대를 갖다놓고 회사에서 숙식을 하면서 부도 직전까지 갈 정도로 부실했던 업체를 정상화시켰습니다. 열심히 하는 직원들에게 파격적으로 대우해주었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여지없이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후 여러 도매업체를 흡수 합병하면서 회사를 키워나갔습니다. 2002년엔 다국적 유통 기업들에 맞서려고 의약품 종합 물류기업인 지오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오영을 비롯한 열 한 개 법인의 2003년도 총 매출이 5000억 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도매 업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하고, 성실하고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돈 앞에서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업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서 살아온 그는 이제 순위가 매겨지지 않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바로 자본을 앞세우고 밀고 들어오는 다국적 기업 앞에서 한국 의약 유통산업을 지키는 일입니다. 평생을 바친 제약 업계가 외국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글은 조원기님이 월간 석세스파트너 3월호에 쓴 인터뷰 기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www.successpartn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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