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훈련을 받아 본 사람들은 행군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잘맞지 않는 군화에 발꿈치가 까지고 발가락엔 물집이 잡히고 완전 군장의 무게는 날이 갈수록 버거워 진다. 하필 더운 날에 행군하는 경우가 많아 목은 타오고 온몸엔 땀이 마른 소금기가 불쾌하게 늘어간다. 그래서 몇시간에 한번 있는 휴식시간이 되면 어지간해서 드러눕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며칠짜리 행군이라 스타일은 구긴지 이미 오래다. 평평한 땅이라면 어디든, 맨땅에 철모를 베고 큰 대자로 퍼져 버린다.

그 때 당신의 소대장은 어디에 있었는지 혹 기억하시는지. 길 한켠에 서있거나 대오 근처에 조용히 앉아있다. 소대장이 똑 같이 누워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리더이기 때문이다.

소대장의 계급은 소위다. 육사 혹은 삼사를 막 졸업했거나 ROTC로 임관한 직후니까 나이는 겨우 23세 정도다. 훈련병들에 비해 많아야 네 살, 적을 경우 한두살 차이의 형일 뿐이다. 세상 경험이 많아야 얼마나 많겠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품위’를 지키려고 애쓴다. 자신이 힘들어 하면 부하들은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남을 이끄는 리더의 위치가 소대장들을 소대장 답게 만든 것이다.

리더십에 대한 여러가지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자리’가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듣던 얘기로 형과 동생이 야밤에 공동묘지 앞을 함께 지나면 누가 더 무섭겠냐는 질문을 기억하실 것이다. 답은 형이 더 무섭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형에게 의지한다. 형은 자신 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 형이란 자리가 동생을 보호하고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책임을 지운 것이다.

당신은 리더십 경험을 언제 해보았는가. 당신이 사장이 아니라면, 임원이 아니라면, 또는 부장, 팀장이 아니면 회사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우리 풍토다.

자리가 리더십을 만들다보니 남을 거느릴 위치가 못되는 사람이 앞에 나서면 ‘주제 넘은’ 일이 돼왔다. 장(長)을 맡기 전에는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없고, 기를 틈도 없다. 그나마 일을 떠나 외부에서 그런 역할을 연습해 볼 수 있는 과외 활동이나 사회 활동엔 눈 감아온 직장인이 훨씬 더 많다.

능력이 있고 지도자가 될 의지가 있다고 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사조직이나 파벌 가르기로 오해 받을 가능성이 높아 몸을 사린다. 그 결과 직장 사회는 공식적인 라인 이외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가 어려운 단절의 사회가 돼왔다.

이렇게 자라 오다 막상 리더십을 발휘해야할 위치에 오르면 그래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서원 혹은 팀원들의 진심어린 ‘충성’을 이끌어내는 방법인지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다. “너무 잘 해주면 버릇이 없어지고, 조금만 소홀히하면 돌아서 원망하는” 사원들이 너무 많다는 게 초임 간부들의 단골 하소연이었다.

그 결과 한국의 직장 사회를 특징지어온 리더십은 바로 ‘강압’의 리더십이었다. 마감을 주고, 목표를 주고, 과업을 맡겨 제대로 해내면 인센티브를 주고 못해내면 무안을 주고 ‘밟는’ 식 말이다. 아랫사람은 그냥 두면 절대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X이론’과 ‘성악설’에 입각한 저급한 경영 행위가 주류를 이룬 것이다.

더 묘한 것은 이에 대한 직장인들의 반응이다. 반성없이 이런 강압적인 리더십에 스스로를 길들이려 노력해왔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임원 회의에서 재떨이를 던지는” 정도가 돼야 승부욕이 있는 사장으로 평가해주고, 직원들에게 다정다감한 ‘부드러운’ 상사는 ‘이지 고잉(easy going)’하는 무능한 인물로 절하해 버린다. 이야 말로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머슴 근성’ 인 것이다.

다행히 이런 불합리는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낮은 직급의 사람도 팀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생기면서, 승진이나 인센티브에 줄서기 보다 개인 실적이 훨씬 중요해지면서, 그리고 머슴 근성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프로페셔널로서의 자부심을 갖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가짜 리더를 가려내는 눈들이 밝아지고 있다.

이 추세는 이제 회사 사회를 ‘상사’가 아니라 ‘리더’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시대적 분위기를 예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상사가 아니라 리더가 필요한 이유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이젠 부하들이라고 해서 더 이상 계급으로 통제할 수 없다.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행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더구나 전직이라는 탈출구가 예전 보다 넓어졌다.

둘째, 그간에는 상사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부서장 회의에서 오간 내용은 부서장들만이 알던 시대도 있었다. 이제 사내 정보는 대부분 공유된다.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는 일이란 크게 줄었다.

세번째 인터넷 시대는 상사의 경험이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걸 의미한다. 상사도 부하에게 묻고 배워야 할 것이 늘고 있다. 통제력의 역전 현상이 빚어진다. 이러니 부서를, 팀을, 태스크포스를, 회사를 과거의 방식으로 이끌 수 없게 돼있다.

회사에서 승부를 걸 각오인 당신은 이제는 승진이나 실적이나 경험 쌓기를 지향하는 동시에 반드시 리더가 될 것도 목표로 삼아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솔선수범하는 것인가,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인가, 팀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인가, 최대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르는 사람들(follower:추종자)이 있어야 이끄는 사람(leader)이 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주장을 해도 듣고 따라주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의 소리는 실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조건 사람들을 많이 이끌면 되는가. 그건 직위로도 해결할 수 있다. 사장은 당장 내일 전사원 조회를 소집할 수도 있다. 관광 가이드는 깃발을 높이들고 “이걸 놓치면 버스를 못탄다”며 사람을 이끌 수도 있다.이런 건 명령이거나 인솔에 불과하다.

진정한 리더는 추종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어떤 일에 동참할 때는 언제인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향일 때 사람들은 몸을 던진다. 동감할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여겨질 때 사람들은 자신을 잊고 따를 수 있다.

그런데 공통의 목표는 어떻게 찾는가. 설문조사라도 해봐야 하는가. 하나씩 물어가며 그들이 원하는 것에 맞추어야 하는가. 방법은 정보 공유에 있다. 최근 은퇴한 GE의 전회장 잭 웰치는 “리더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그대로 공개해주면 결국 사원들도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데 공감하고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결국 중요한 것은 공명정대한 목표 설정이요,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요, 솔선수범하는 자세라고 하겠다.

사실 요즘엔 모든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할 각오가 돼있다. 그러나 여전히 관료주의의 벽에 부딛히고 부서 이기주의에 꼬여 의욕을 잃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걸 해결해주는 건 결국 회사 시스템의 정비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원대한 비전을 지닌, 활동적인 리더들이 나타나야만 하는 이유다.

여전히 이런 ‘소박한’ 꿈을 지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일단 뜻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앞서갈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직장 생활이란 행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책임감을 느끼고, 퍼져눕지 않는 리더에겐 격이 묻어나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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