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는 모자란 것 보단 넘치는게 낫다고 한다. 유학자들도 삼국지의 장비같이 괄괄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기가 빠져 유약한 사람을 교정하는 것 보다 훨씬 쉽다고 했다. 기가 넘치면 옆에서 방향을 틀어주고 때로 좀 죽일 수도 있지만 아예 모자라는 기를 대신 채워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기(生氣)가 정말 필요한 우리 직장은 아직까지는 기에 관한 한 ‘죽이기 권하는’ 사회다.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던 원대한 포부의 대학생도, 반대로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던 ‘오렌지족’ 출신도 직장에 들어오면 고분고분한 신입사원으로 바뀐다. 특히 꽤 덩치가 있고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일 수록 더하다.

요즘의 신입사원 뿐이랴. 당신도 그랬고 필자도 그랬고 지금 그들이 그렇게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들 글자 그대로 ‘성질 다 죽이고’ 직장을 다닌다. 왜 그럴까.

해고당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직접적인 이유로 보긴 어렵다. 애써 채용한 신입사원이 좀 튄다고 곧바로 내보낼 대기업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취직하기가 너무 어려워서일까.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하는 감사함이 기존 질서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소시민적 태도를 낳는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취직하기 쉬웠던 시절에도 과장, 대리 등 초급간부의 권위와 파워는 더 세고 높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기 죽이기는 오히려 그 때가 더 심했다. 당시엔 술집 재털이와 선배 구두를 술 잔으로 써야 했던 이들까지 있었다.

필자는 우리가 기 죽어 살았던, 또 이 시대의 직장 신참들이 기 죽어 살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실패하기 싫어서”라고 생각한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는 하지 않기 위해서”다. 홀로 서 본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다 보니 일단 기존 질서에 자신을 맞추고 보려는 것이다. 그 기존질서라는게 뭔가. 전체를 위해 개인의 욕구를 부지불식간에 통제하는 일본식 기업문화를 본 떠 만든 조직 문화 아닌가.그래서 우리 회사 사회는 직급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 죽이고’ ‘기 죽어 사는’ 무기력(無氣力)의 집단으로 자라왔다.

문제는 성공을 지향하기 보단 실패를 피하겠다는 이 소극적인 태도가 우리 직장인들의 몸에 배있다는 점이다. 회사 일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가 알아서 하는 자기 계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만고만한’ 목표를 세워놓고 ‘약간의 짬’을 낸다는 태도가 고작이다. “한달이면 마케팅 정도는 마스터할 수 있어”하는 호기를 부리는 사람이 없다. “바쁘니 소설책 한권 읽을 시간이 없지”하며 기 빠진 소리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저금으로 돈을 모은 ‘알부자들’의 지혜는 단순하다. 알부자 치고 쓰고 남은 돈이 있으면 저금하는 사람은 없다. 뭉치돈을 떼서 적금이든 계든 큰 것을 들고 남는 돈이 있으면 쓰는 식이다. 세월이 흐르면 뭐가 남는가. ‘큰 돈’이다.

자기계발도 마찬가지다. 일 다 마치고 쉬거나 놀고 가족들과 잘 지내고 그리고도 남는 여유와 시간이 있으면 나를 위해서 쓴다는 사고방식으론 성과가 있을 수 없다. 운동도 너무 쉬운 것을 하면 매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지 않은가.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는 한가한 자기 계발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2,제3의 직장 혹은 직업을 갖지 않으면 50 대이후 30년 가까이를 뭘 먹고 살아야 할지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평균 수명 80세 시대를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의 생존법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자기계발에 돈과 시간을 공격적으로, 먼저 ‘투자’하고 그래도 남는 시간이 있으면 다른 것을 한다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고만고만한’ 목표를 세워놓고 ‘약간의 짬’을 낸다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일상의 중심을 자기 계발에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방법은 있다. 계획을 잡을 때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매우 도전적인’ 수준의 버거운 목표를 잡는 것이다. 웬만한 각오와 물적,시간적 투자가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 말이다. 운동으로 치면 땀이 흐르고 초기엔 온몸이 쑤실 정도로 힘든 것을 매일의 목표로 삼는 것이나 마찬 가지다.

‘작심3일’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쓴다. 작심3일이야말로 실패하기를 두려워하는 집단 무의식의 표현이다. 무리하게 계획을 세우면 3일도 못가니 목표를 낮춰 ‘할 수 있는 것’이나 제대로 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눈높이를 낮춘다고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쉽게 한 일엔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왕 오래 못 갈 거면 계획이라도 크게 잡으라는 게 필자의 대안이다.하루 10을 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 작심 3일로 끝나면 30을 하는 셈이지만 하루 100을 하기로 한 사람이 반밖에 못하면서 3일을 하면 150은 한다.

뭉치돈부터 떼 저금하는 습관이 든 사람이 여간해서 계 붓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간의 실적 때문이다. “이미 17번을 부었는데” “벌써 3천만원이 모였는데” 하는 식이다. 버거운 목표를 세우자는 논리도 사실 이런 ‘진도’와 상관이 있다. 처음이 어렵지 ‘진도’가 나가면 그동안 쌓은 실적이 새로운 동기부여를 해주는 장점도 있다.

많은 이들이 “시간이 없어 야간 대학원에도 못 간다”고 불평들 한다. 그러면 못가는 대신 대학원에서 하는 정도는 목표로 잡아야 정상 아닌가. 학위과정 같은 남에게 맡기는 자기 계발들은 얼마나 목표가 도전적인가. 2,3년간 많게는 40개 강좌를 소화해야 한다. 시험도 치르고 숙제도 해야 한다. 혼자 ‘만만한’ 목표만 세워 ‘시간 날 때’ 하는 식으론 격차를 줄일 수 없다. 기본적으로 ‘진도’가 안나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왕 경영 공부를 해야겠다고 정했으면 경영대학원에 다니는 사람이 2년에 끝낼 걸 3,4년안에는 끝낸다는 거창한 중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낫다. 경영 관련 서적을 한달에 2권 정도는 읽겠다는 건 너무 쉬운 목표다.

또 이왕 토익 공부를 하기로 했다면 50점, 1백점을 더 올리는게 아니라 올해 이후 다시는 토익을 돌아보지 않아도 될 수준을 목표로 하는게 바람직하다. 1백점 높이기 목표와 만점 목표는 교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혹시 승부욕을 기르기 위해 도전적인 레포츠에 도전키로 했다면 한 종목에서라도 전문가 수준이 될 각오를 처음부터 하는게 좋다. 주말에 한번씩 패러그라이딩도 하고 산악자전거도 타고 하는 식으론 놀이와 취미 수준으로 그친다. 연말에 돌이켜 보면 즐거웠던 기억밖에 없다. 암벽등반을 예로 들면 협회에도 가입하고 연말 쯤엔 해외의 고봉에도 도전할 계획을 세워야 ‘자기 계발’이라고 불러 줄 수 있다.

어렵고 벅찬 수준으로 목표를 세울 때 자기 계발은 생활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버거운 만큼 중간에 계획 수정이 있을 수도 있다. 절반 밖에 못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창한 계획은 실패해도 남는 것이 많다. 적잖게 나간 진도가 있고, 다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경험이 쌓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활이 변한다. ‘이 정도도 못하랴’하는 객기(客氣)가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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