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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죽는 영혼이 많은 시대를 사는 지혜

"칼에 죽는 육체보다 돈에 죽는 영혼이 더 많다." 새뮤얼 스마일즈의 시대 진단이다.

동구권을 여행한 한 친구는 중학교 1학년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핫팬츠를 입고 몸을 숙여 자동차의 앞 유리를 닦아주고는 동전을 구걸하는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지구상 어디엔들 그런 장면이 없는 곳이 있을까마는,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것을 소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보기도 하고, 사회주의 어쩌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제 나라 국민 하나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면 모든 게 허사라고 혀를 찰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친구의 경우는 절대로 내 딸, 내 나라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그런 꼴로 만들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지금보다 더 지독하게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다.

사견이지만, 무거운 족쇄를 발목에 차고 광산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보고서 이런 체제는 반드시 뒤바꿔 놓아야겠다고 작심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나 소도시의 가난한 의사로서 지역 사회의 NGO 및 언론 활동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지만 좌우 대립의 틈바구니 속에서 정치적인 좌절과 생활고 끝에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살길은 오로지 Self Help, 즉 자조(自助)밖에 없다고 작심한 새뮤얼 스마일즈나 그 분발심(奮發心)은 한 우물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광산촌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가 신념을 세우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노동당에 입당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노동자 출신의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의외로 심심찮게 드러낸 반노동자적인 정책 결정과 자국 이기주의 따위를 지켜보노라면 좀 거칠게 말해서 무슨 정치 논리나 이념과는 상관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장사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자기 경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글을 쓰고 강연을 해 왔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제적 자립'을 강조해 왔다. 내가 힘주어 피력한 그런 가치와 지향들은 조직을 떠나 1인 기업가로서 홀로서기를 선택한 내 삶의 궤적과 맞물려 있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사르트르는 "무신론이란 참으로 힘든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오로지 의지와 사유의 힘만으로 사상과 현실의 가시나무 숲을 헤쳐 나간 철학자의 분투와 고독이 짙게 배어 있는 고백이다.

그는 가장 적극적인 현실 참여 지식인이었지만 자기 내부의 대척점에 '지상에 내던져진 고독한 개인의 실존'이라는 의식을 둔 모순의 지식인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어찌 보면 모든 자연인의 본디 모습일 수도 있는 그 모순의 꼬투리를 잡고 좌우에서 그를 못살게 굴었다. 그는 철학에서 참으로 고독하고 힘든 길을 걸은 1인 기업가였다.

가난한 지역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일삼아 가뜩이나 얇은 지갑을 탁탁 털어 시민 단체를 만들고 지방 신문을 인수해 귀족 정치 타파와 의회 개혁에 열심이었던 스마일즈가 결혼할 때 신부에게 준 선물은 빈털터리 의사 명함 한 장이었다. 생활비가 없어서, 폐업한 병원 문을 다시 열어 의사를 겸직할 수밖에 없었던 언론사 사주는 아마도 유사 이래 스마일즈 한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영국도 당시에는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중도와 온건의 설자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좌우의 냉대 속에서 의사, 언론인, 사회 개혁가로서 모두 실패했으며 생계를 위해 철도 회사 직원으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라는 베스트셀러 대박이 터지자 어떤 사람들은 '이기주의의 전도사'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소년 소녀 가장 또는 불우 근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야학에서 행한 강연록이었던 이 책이 어째서 이기주의의 전도서로 낙인찍힐 수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비난은 오죽했으면 그의 딸이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기 위한 목적만으로 스마일즈의 전기를 썼을 정도였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을 유지하고 빈곤 때문에 볼썽사납지 않은 생활을 위해 경제적으로 자립한 '인디(indi) 자아'를 구축하자는 캠페인과 남을 짓밟고 남의 것을 빼앗는 이기적인 출세를 선동하는 것은 확연히 변별됨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기 경영'이라는 테마를 분배의 공동선에 배치되는 개인주의로 간주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법한데, 아무튼 1인 기업가는 참으로 힘든 사업이다. '무리 짓지 않는 자에게 화 있으라'는 성경 말씀도 없는데 말이다.


무조건 몰입하라, 길이 열릴 것이다

스마일즈의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다는 것, 재테크의 의미에 대해 이제 우리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책이다. 경제적 성공을 위한 재테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부호가 되기 위한 왕도가 원래부터 아니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인생의 여러 길 중 속물이 되는 노선의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평범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기초 교과목으로, 유목 민족이 말 타기를 배우는 것과 같으며 농경 시대에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농부가 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계몽과 교육이 필요한데, 기본 소양과 능력의 지수가 높은 사람은 더욱 키워 주고, 낮은 사람들은 평균치로 끌어올려 주어 개개인의 프로파일이 가진 품질을 높여 주어야 한다. 사실상 그 프로파일의 총합이 국가 경쟁력인데, "부와 행복은 제도나 국가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노동과 근면으로부터 나온다"는 스마일즈의 말이 가진 실용적 함의는 바로 이것이다. 스마일즈는 오늘날 신용 평가 기관이 매기는 대외 신인도보다 그것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

사(私)를 버리고 대의와 사회 개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만큼 '사'를 위해 애쓰는 주식 시장의 개미들, 살기 위해 자기 계발서를 밤새워 읽고 성공과 재테크에 몰입하는 사람들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는 정직한 노동과 근면한 발품을 통해 당당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분투하는 자기 자신이며, 순둥이 강아지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맛있는 것 사가지고 오는 엄마 아빠와 아들 며느리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투기꾼의 '사'는 다르다. 그것은 사(邪)이다. 시절이 하수상하지만 당신이 사(私)를 버리는 다른 아름다운 일보다는 사(私)를 위해 살기로 작정한 영혼이라면, 혹시 돈에 죽어 가는 영혼이라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만 가지 망상과 잡사를 다 집어치우고 우선 지금 선택한 일에 죽어라 하고 몰입하라는 것이다.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에는 몰입의 위대한 예화로 프랑스의 도공 베르나르 팔리시를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유리 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팔리시는 정규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유리 채색공으로 일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만인에게 펼쳐진 하늘과 땅, 내게 그것말고 다른 책은 없었다."

유리 업계가 쇠퇴하자 팔리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토지 측량과 유리 채색으로 근근이 먹고 살았다. 10년 동안의 보따리 장사 끝에 결혼을 해 정착한 그에게 자녀가 생기자 돈 들어갈 곳이 많아진 데 비해 벌이는 영 시원치 않아 먹고 살 길이 아득했다. 그는 늘어난 살림 규모에 걸맞은 수입을 보장해 줄 새로운 분야를 모색했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그는 도자기 유약에 관심이 많았지만 16세기 당시 요업 후진국이었던 프랑스에서 유약으로 생업을 삼는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생계를 꾸릴 일을 모색해야 할 그에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만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제 유약 잔을 보게 된 것이다. 팔리시는 자신이 본 것과 똑같은 유약을 입힌 도자기를 반드시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한다. 팔리시는 이후 10여 년에 걸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인고의 반복 실험을 거듭한 끝에 유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최후의 가열이 절실히 필요할 때 가마의 땔감이 떨어지자 자기 집 울타리와 식탁, 선반, 심지어 바닥재를 뜯어내 가마 속에 집어넣고 가족들에게마저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처절한 유약 개발 과정이 책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번역을 하면서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몰입은 반드시 성공을 낳는다. 또한 다소 무조건적인 몰입도 '돌파'의 의미가 있는 법이다.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떡을 먹다 목이 막혔을 때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주어 마침내 쑤욱 하고 넘기듯이 말이다. 혹시 내가 선택한 몰입이 방향이 맞질 않아 헛수고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신기한 것은, 하나의 몰입이 겉으로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여러 인생사를 풀어 나가는 열쇠를 차례대로 선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선택을 믿어라.

영화 <스타 워즈>에서 젊은 전사 루크는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이런 음성을 듣는다.
"컴퓨터와 기계를 꺼. 뜻대로 해, 너의 느낌을 믿으라구"(Turn off your computer, turn off your machine and do it yourself, follow your heart, trust your feelings)! 루크는 결국 성공한다


(출처)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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