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입사 초에 ‘3,3,3만 버티면 성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한 곳에 오래 붙어있는게 미덕이던 시절(사실 불과 몇년 전이다)의 얘기라 생소할 수도 있겠다. 입사한지 3일, 3개월, 3년 쯤 될 때면 “평생 이 회사에 목숨 걸 일 있나”하는 회의가 생기고 이것을 이겨내야 직장 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경험칙이었다.
묘하게도 정말 그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을 적응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로 여기는 풍토였다.과연 지금도 그런 평가가 유효할까.
주식투자 관련 용어 중에 ‘손절매’라는 것이 있다. 손해보고 팔기다. 살 때 보다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시장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손해가 늘기전에 팔아치우는 것을 뜻한다. 비싼 가격에 샀을 때를 생각하면 손해지만, 깡통을 차는 것에 비해선 엄청난 이득이다. 재기와 역전의 기회가 남았고 무엇보다 빈털털이가 될 위험은 피했기 때문이다.
손절매의 이런 가치를 아는 사람들도 주식시장 밖으로 나가면 행태가 달라진다. 부동산을 예로 들자. 1억2천만원을 주고 산 아파트가 값이 떨어져 1억원이 됐다. 전망에 따르면 8천만원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하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손절매 개념을 도입하면 당연히 1억원에라도 팔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7천만원에 같은 크기의 집에 전세를 얻어 들어가면 굴릴 수 있는 현금 3천만원이 생긴다. 8천만원으로 떨어지는 최악의 경우에 비해 2천만원의 손해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 ‘손해보고’ 1억원에 파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물론 이유야 많다. 이사가 번거럽고 세금, 복비 등 매매비용도 만만찮다. 그러나 정말 못파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바로 ‘본전 생각’이다. 1억2천만원을 주고 샀는데, 어떻게 모은 돈인데, 혹시 다시 오를수 도 있는데…. 이래서 못파는 것이다. 올라주면 다행이지만 내릴 경우엔 2천만원이라는 추가 손실을 눈 뜨고 볼 수 밖에 없다. 1억원에 과감히 팔고 역전과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게 훨씬 현명한 재테크다. 손절매는 더 큰 위험을 피하고 훗날을 기약하는 발빠른 전술이다.
‘3,3,3’으로 다시 돌아가자. 들어오자 마자 3일만에 “적성에 안맞는다”며 연락없이 사라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백일도 못채우고 3개월만에 책상을 정리하는 이를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나. “3년이면 많이 일한 것 아니냐”며 떠나는 이들이 안스러운 적은 없었나. 우리는 당시 그들을 반거들충이(중도에 일을 그만 두는 사람)로 취급했다. 나약한 패배자 말이다.
그러나 다시 보자. 혹 게중에 ‘본전 생각’을 과감히 떨치고 손절매를 한 사람은 없었을까. 시간이 날 때 사라진 그들의 소식을 한번 알아보라. ‘철새’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더 성공적으로 변신한 사람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어쩌면 그들에게는 ‘3,3,3’이 자연스럽게 손절매 여부를 결단해야 하는 시기였는지 모른다.
현재 우리 주변의 상황은 어떤가. 3일 3개월 3년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우리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오늘 끄떡없는 우리 회사가 내일도 그러리란 보장을 누가 하는가. 지금 통하는 내 기술이 내일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밑의 부하가 나를 제치고 승진하는게 회사 규칙상 가능해졌고 나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나쁘면 억울해도 그만둬야 하는 원칙을 만든 업체도 있다. 올해 명예퇴직을 하면 그나마 몫돈을 챙길 수 있고 내년부터는 그냥 나가야한다는 인사 부서의 설명을 들은 고참부장은 지금 불면의 밤을 결단을 위해 보내고 있다.
물론 회사 생활엔 주식투자나 부동산 사고 팔기처럼 정답 비슷한게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다. 손절매가 낫다, 반대로 뚝심있게 기다리는게 더 낫다고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되는 일이 적고 앞으로의 전망을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갖가지 목표를 가진 ‘선수’들이 너무 많아 항상 새로운 변수가 고개를 든다. 명예퇴직을 실시했더니 정작 나갔으면 하는 사람은 자리를 지키고 인재들만 떠났더라는 유의 얘기가 도는 건 이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결론이 어떻게 나오건 간에 자주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 이곳에서 이 일을 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가”를 묻고 그 답에 따라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기적인 점검 작업도 필요하다.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6개월에 한번 정도는 이런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경제는 잘 굴러가는가, 거기에 우리 회사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 우리 부서의 필요성은 여전히 강한가, 내 주특기 내 기술은 다음 달에도 유용한가. 그리곤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 문제 없다” 혹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 아니면 “더 이상 이대로 있어선 곤란하다” 등의 결론을 손에 쥐어야 한다.
실감을 더하기 위해 예를 들자. 지금은 법정관리 상태에 있는 A사가 있다. 당시 이 회사의 부도 조짐은 적어도 60% 이상이었다. 회사가 망하기 몇개월전 임원 가운데 상당수가 이를 느꼈는지 앞다퉈 이런 저런 이유로 퇴사했다. 상무급이었던 B씨가 얼떨결에 대표이사가 됐다. 몇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회사는 부도를 냈다. 대표이사로서 회사 대출에 개인보증을 섰던 B씨는 평생 번 것을 한번에 날린 것은 물론 수십억대의 빚을 졌다. 집안이 풍지박살난 건 물론이다.
그라고 부도조짐을 못느꼈을까. 그에게 부족했던 건 결단이다. 더 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 나름의 결정 시스템이 없었다. 최소한 그는 회사대출에 자신이 보증을 서야할 때쯤 대신 사표를 써야 했다.30년 회사 생활의 명예, 직원들에 대한 의리, 이런 것들이 그의 ‘본전 의식’이었다. 기업인으로서의 명예는 회사가 살아있을 때만 유효하다.
C씨는 이미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박사과정에만 10년째 다니고 있다. 동기는 물론 후배들도 이미 부교수까지 오른 상황이다. 후년쯤 학위를 받아도 직장이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그에게 부족했던 것 역시 결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5년차 때쯤 학위 취득에 차질이 빚어졌을 때 그에겐 ‘손절매’의 기회가 있었다. 삼십대 중반 이면 젊은 나이였고 수료 경력만으로 갈 수 있는 회사도 있었다. 논문은 국내에서 일하면서 쓸 수도 있었다. “1년만 더, 1년만 더”하는 본전 의식이 그를 수렁으로 빠뜨렸다.
B사장과 C씨는 엉덩이 무거운 게 덕이던 구 시대의 영웅일 뿐이다. ‘3,3,3’을 못이겨내는 사람들을 ‘철새’라고 부르며 폄하하던 시절에나 적합한 삶의 방식이다. 이제 그들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더 큰 위험으로 자신을 내모는 무모에 가까운 것으로 변했다.
이리저리 회사를 옮기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 직장에서 오래 있는게 비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결정은 항상 양심의 소리와 강한 느낌에 따르면 된다. 그러나 결단을 자주 내릴 수 있는 버릇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도상연습으로 그쳐도 좋다. 결단을 내리기 위해 사색하는 과정에서 보다 실제에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내 위치를 비판적으로 다시 볼 수 있는 반성의 기회도 될 것이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결단을 내릴 때, 본전의식을 깡그리 잊어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연연하면 새로운 기회가 보이질 않는다. 승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논리로 이뤄진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를 기억하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tomorrow will be anoth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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