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올들어 가장 많이 받은 이메일은 MBA지망생들이 보낸 것이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과연 자신이 MBA공부를 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내용이었다.오죽하면 나 같은 이에게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 정성들여 답변을 해보려했지만 항상 난감했다. 고려해야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집 팔아 유학해야할 사람과 돈 걱정 않아도 되는 이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아무 학교나 골라갈 수 있는 실력파가 있는가 하면 토플 기본 점수를 얻기도 버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2년간 회사를 비우는게 손해인 사람도 있고 유학 안가고 남아봤자 아무런 발전 전망이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세한 사정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필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택했다. ‘Why MBA?’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답을 찾을 때까지 물어보라고 권했다. 가능하면 글로 써보고 친지들에게 말로 설명도 해보라고 주문했다. 학위를 따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표도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대개 두 달 정도면 스스로들 답을 찾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결론을 내리던 간에 그 고민 자체가 유익한 경험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이메일을 교환한지 두세달이 지나면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 큰 보탬이 됐다”는 회신도 받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고독한’ 시간을 가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어디에 서있고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직장인생은 새로운 도전과 경험의 장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최악의 시나리오도 준비해야’라는 편에서 같은 얘기를 했던 기억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찾는 번거러움을 없애기 위해 다시 인용한다.
“그러니 문득 멈춰서 시간을 갖자. 동료들과의 술자리도 미루고 가족들에게도 양해를 구하자. 점심도 저녁도 혼자 먹고, TV도 신문도 외면한 채 1주일 정도만 나만을 위한 고독한 시간을 갖자. 그리고 조용히 계획을 짜는 거다. 앞으로 남아있는 회사 인생 10여년과 그 이후를 위한 ‘직업 계획’을 세우자”
혹 필자의 권유대로 최근 ‘자발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가. 친구들과의 약속이 만들어지지 않고 동료 선후배도 전부 퇴근해서 얼떨결에 혼자된 시간을 말하는게 아니다. 일을 끝마치지 못해 퇴근을 할 수 없이 늦춘 날의 그 어정쩡한 시간도 아니다. 스스로 마음을 먹고 철저히 혼자된, 그리고 아는 이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외로운 시간 말이다.
우리 직장인들은 이제까지 외로운 적이 너무 없었다. 따로 방이 있는 임원이 아닌 한 직장인들은 어제도 오늘도 옆자리, 앞자리의 동료 선후배 상사와 함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칸막이가 돼있는 곳도 있지만 작은 소리로도 옆 동료를 부를 수 있다. 점심도 같이 먹기 보다 혼자 먹기가 더 어렵다. 때 마다 회식이 있고 선후배 동료도 먹고 마시는데는 ‘물’을 먹이질 않는다.
외로워질 필요가 있다. 갑자기 회사로부터 ‘버림’을 받아 정말로 외로워지는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고독해질 필요가 있다.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해야 혼자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최근 수년간 숱하게 확인된 대로 이제 게임은 단체전이 아니다. 개인전이다. 단기필마(單騎匹馬)의, 고독한 승부사 정신이 없이는 가망이 없다. 하루하루 쉼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그건 승부사의 자세가 아니다.
골프천재 타이거 우즈 조차도 필드 코치인 캐디가 있고 리치 하몬이라는 스윙교정 코치가 있다. 투어가 없는 날엔 지난 대회의 실수와 잘못생긴 버릇을 교정하는데 종일을 쓴다. 우리는 매일 쉬지 않고 시합에 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연습도 반성도 준비도 전략도 없이. 승산이 있을 수가 없다.
고독한 시간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한 거창한 작업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가끔씩 불러야 하는 ‘작전타임’ 같은 것이다. 운동 경기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상대방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점검해야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마치 MBA지망생이 ‘Why MBA’를 묻듯이 스스로에게 한두달을 생각해야할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10년쯤 뒤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정말 조심해야할 일이 있다. 이런 화두를 들고 사색하다 자기비하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마치 불성 혹은 본성을 찾으려고 수양하다 마(魔)에 빠지고 마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처럼 미묘한 문제다.
기껏 고독한 시간을 내 자신이 가진 것은 무엇인지, 꼭 필요한데 부족한 것은 없는지, 뭘 잘하고 무엇에는 약한지 진지하게 사색한 사람들이 도달하는 대부분의 결론은 ‘고만고만한 능력에 그저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 신세’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경쟁상황이 극심하다보니 스스로 한계를 절감하고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아, 힘도 빽도 실력도 없는 내 신세”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지한 직장인들 가운데 자신감이 적은 이들이 의외로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슨 얘긴가. 예를 들자. 지방대학 출신, 나이 마흔, 승진은 동기들에 비해 2년 늦고, 재산은 3년전 마련한 집 하나가 전부, 토익 시험 7회 응시해 겨우 7백점 도달, 말주변은 없지만 친한 사람과는 관심분야인 역사 얘기가 나오면 밤샐 정도, 평범한 외모, 지칠줄 모르는 체력, 새로운 아이디어는 적지만 노력하는 자세 등이 자신이 고독한 시간을 내 발견한 지금까지의 중간성적표라고 하자. 이 사람은 어떤 결론은 내릴까.
지방대학 출신이면 일류대학 출신에 비해 열세고, 마흔이면 삼십대 들에 비해 젊은 나이도 아니고 집하나가 전부면 유산받은 사람과 비교할 정도도 못되고, 후배는 한번만에 토익 9백점을 넘어버리고…. 그는 결국은 자포자기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 많은 이들이 이런 사색의 과정을 겪어 자신감을 잃고 만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노릇이다.
이런 사색은 범주를 잘못 적용한 오류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포터 등 전략 연구가들의 말을 빌면 비즈니스를 이끄는 힘은 자원(resource)이 아니고 능력(capability)이다. 1억원의 돈을 자원이라고 할 때 이를 최적의 투자처에 굴려 돈을 불리는 것이 능력이다. 문장력이 자원이라고 할 때 소설을 한 편 써내는 것이 능력이다. 학벌이 자원이라고 할 때 그 학벌에 대한 기대치에 걸맞는 업무성과을 올리는 것이 능력이다.
그러니 학벌, 재산, 외모, 말솜씨, 체력, 문장력, ‘빽’, 판단력, 성격, 경험,외국어 능력,매너 등은 ‘자원’일 뿐이다. 당신은 그런 자원으로만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건 올바른 비교가 아니다. 자원이 많다고 자신있어할 일도 아니고 적다고 낙담할 일도 못된다. ‘능력’으로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게 자원이기 때문이다. 일류대학 출신중에 의외로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원만 믿고 혹은 자원이 주는 과실만 따먹고 자기 능력 계발에 소홀한 결과다.
그러니 애써 고독한 시간을 내 자신을 돌이켜 볼 때 눈에 띄는 ‘자원’으로만 스스로를 평가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자원으로만 평가한다면 타이거우즈 외에 모든 골퍼들은 지금 즉시 은퇴하는게 맞을지 모른다. 승부는 자원이 아니라 자원을 쓸 수 있는 능력에서 갈린다.
좋은 뉴스가 있다. 회사들의 경우도 사내 지식자원 활용률이 15%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개인의 경우 통계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자원을 절반이상 활용하는 이가 드물 것이다. 있는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때 우리에게도 역전의 기회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자원이 부족하다는 잘못된 이유로 자기비하에 빠지는 잘못은 없어져야 한다. ‘힘도 빽도 없다’는 말은 입에 올리지도 말자. 그건 “우리 한국은 석유가 없어 발전 전망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이 지금까지 받은 명함을 한 번 꺼내보라. 그중 기억되는 이가 몇명인가. 아니 그중 당신을 기억하는 이가 몇명일까. 가진 자원을 1백%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기 계발의 출발점은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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