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어르신은 평생을 국립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신 분이다. 연구나 티칭보다는 행정 쪽에 능해 젊은 시절부터 보직 교수를 오래 하셨다. 나는 신혼 때 처가살이를 한 덕택에 다른 집과는 달리 장인어른과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고 있다. 신혼생활을 대전에서 했는데 장인어르신과 자주 외식을 다녔다. 하지만 주말에는 대전 시내를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 때 속으로 “저렇게 아는 사람이 많은데 국회의원이라도 나가지 왜 학교에 계시나” 란 생각을 할 정도였다.
안다는 것도 여러 종류인데 내 눈에는 대부분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또 아는 사람의 폭이 넓었다. 교수들은 물론 직급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학교 수위, 행정직원, 세 들어 사는 사람, 제자, 음식점 주인, 고향사람 등등… 그런 인품 때문에 은퇴 후에도 학교나 집안에 무슨 일만 생기면 사람들은 조언을 구하러 왔다.
나름대로 대인관계에 관한 여러 노하우가 있겠지만 내 판단에 그 분의 핵심역량은 베품과 배려이다. “사람들에게 밥을 대접해라, 도울 수 있을 때 도와라, 언제 어디서 어떤 신세를 질 지 모르니 늘 베풀어라…”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다.
우선 형제나 일가친척들에게도 극진하게 했다.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어야 가정이 화목할 수 있다며 손해 보는 역할을 자청했고 덕분에 그 집의 형제애는 장안에 소문이 자자하다.
삼겹살을 구울 때도 당신이 직접 구워 손자들에게 주어야 하고, 택시를 타도 당신이 돈을 내야만 한다. 당신이 능력 되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내느냐는 것이다. 이삿짐을 싸는 것도 본인이 직접 싸야 하고, 짐도 웬만해서는 본인이 직접 들고 다녔다. 사회활동하는 나 같은 사람이 보자기를 들고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학장까지 하신 분이지만 집안에서는 허리가 아픈 장모님을 도와 헌신적으로 일하신다. 쓸고 닦고, 쓰레기 버리는 등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한 번은 장모님이 몇 달 동안 편찮으신 적이 있었는데 부엌일까지 하다 주부습진까지 걸렸다면 알만한 것 아닌가? 당신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지내시던 분이다.
그런 분이 위암진단을 받고 누운 지 몇 달이 지났다. 워낙 건강했었는데 연세도 있고 해서 그런지 많이 쇠약해지셨다. 가까운 분이 편찮으시니 집안은 완전 폭격을 맞은 전쟁터 같은 느낌이다. 아내는 물론 처가집 식구들은 모두 정신이 나간 채 병구완에 전력하고 있다.
아픈 것이 건강한 것만은 못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다.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편찮으시다는 사실도 주변에 못 알리게 하고 쉬쉬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방문을 하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우선 지방에 계신 친척들 (워낙 집안이 번성한데다 끈끈하기가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다)이 사돈에 팔촌까지 몰려오는 바람에 병원에서 경고를 받기까지 했다. 입원실에 이렇게 많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몇 조로 나누어 면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찾아오는 사람은 친척뿐이 아니다. 면면이 다양하기 그지 없다. 앞 집 살던 사람, 고향 친구, 학교 친구들, 제자들… 멀리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허름한 행색의 먼 친척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병원비에 보태라며 많은 돈을 내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방문한 사람들이 내놓은 성금 덕택에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는 것도 다행이고, 하루도 손님 없는 날이 없어 심심하지는 않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장인어르신은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잊고 지내는 사실이다. 또 죽음의 종류도 선택할 수 없다. 이왕이면 병 없이 살다 죽고 싶어한다. 하지만 장인 어르신을 지켜보면서 육체적 고통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시간이 너무 길지만 않다면 아파 누워있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푼 사람도 그렇고 은혜를 입은 사람도 그렇다. 아파 누워 있다는 것은 은혜를 입은 사람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좋은 기회이다.
어떤 인생이 성공적인 인생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영원한 인생의 화두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 둔 사람을 보면 그것은 명확해 진다. 그런 사람에게 돈이나 권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인생의 대차대조표는 죽음을 앞두고 작성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완성된다. 삶은 죽음으로서 완성된다. 장인어르신의 투병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출처)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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