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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격려




19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에게
어느 날 한 노인이 자신의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 노인은 로제티에게 자신이 조금이라도
화가의 재능이 있는지를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로제티는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다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전혀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인은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어느 정도 각오한 듯 그리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노인은 다시 낡은 스케치북 하나를 더 꺼내더니
그 그림들을 봐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자기가 잘 아는 젊은 화가 지망생이 그린 그림들이라고 했습니다.
로제티는 노인의 진지한 태도에 이끌려
그 그림들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그림들은 놀랍게도 아주 좋았습니다.
흥분한 로제티는 이 그림을 그린 젊은 화가지망생은
아주 탁월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곧바로 전문적인 화가 수업을 시작하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노인은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든 로제티는 그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
혹시 아들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이 그림들도 제 것입니다. 젊었을 때 제가 그린 것들이지요.
만약 그때 당신 같은 화가가 한 번이라도 칭찬을 해주었더라면...
하지만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기에
도중에 그만 포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칭찬에 대해 어색해하지 마세요.
칭찬에 대해 인색하지도 마세요.
'잘하고 있어.' '재능이 있네!' 이 한마디의 격려와 칭찬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만큼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글쓴이 : 장성웅원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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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전 23승의 비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23번을 싸워 전승했습니다.
결코, 기적이 아니라 최적의 전략과 전술을 이용하여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만들어 놓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된 후
다시 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은 빈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피난민이나 패잔병들 그리고 노인들까지도 그를 도우려고 애썼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서 일치단결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특히 '명량 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에서 왜선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비록 13척의 배로 전장에 나서야 했던 조선 수군이었지만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그를 믿고 따라주었던
부하들과 백성들의 '무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23번의 전승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에 불가능한 일도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리더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리더가 구성원들을 먼저 사랑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면
구성원들은 자연스레 리더를 신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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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명이다




그녀는 빈민가에서 10대 흑인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해 14살에 임신해 조산아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낳은 아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게 됩니다.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마약 중독자로 10대를 보내며
고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곁길로 가기 쉬운 암울하고도 불운한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재는 타임지가 뽑은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 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바로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자신이 쓴 <이것이 사명이다>라는 자서전에서 네 가지 사명을 말합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

가난과 아픔 속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것을
인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도, 지금의 부유함도
인생의 사명으로 여긴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여정 가운데는 수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사명으로 삼을 수도, 좌절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글쓴이 : 장성웅원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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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3천 안타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운 장훈 선수는 수많은 차별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한 일화로 유명합니다.

귀화를 거부하는 장훈 선수에게 일본인들은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장훈 선수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한국인임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장훈 선수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민족애를 가진 어머님 박순분 여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화 문제로 잠시 흔들리는 아들을 향해 크게 호통치셨습니다.
"편하게 살자고 조국을 버리는 그따위 짓을 하려거든
당장 야구를 때려치우고 가족에게 돌아와라!"

일본인들은 이런 장훈 선수를 미워하고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자기 뿌리에 대한 자존감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경기중 장훈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조센진은 돌아가라'는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한두 사람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관중석 전체에서 울려댔고,
결국 장훈 선수는 배트를 내려놓고 다시 대기석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관중석이 잠잠해지자 다시 타석에 들어선 장훈 선수는 크게 말했습니다.
"나는 조선인입니다. 그런데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그러고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힘차게 배트를 날렸습니다.
그 순간 관중석의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기막힌 장외홈런이 터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있나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를 향해 시원한 장외홈런을 날려보세요.
그 자리에 당당한 '나'만이 남을 것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의 열등감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좋은 집에 사는지, 못 사는지,
우리의 직업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열등감 따위는 떨쳐내고, 어느 순간에나 당당하십시오.
그리고 보란 듯이 세상을 향해 나를 외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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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에 감사하는 마음




두 사람한테 똑같은 씨앗이 한 톨씩 주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그 씨앗을 심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정원에서 가장 토양이 좋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다른 한 사람은 거친 토양의 산에 그 씨앗을 심었습니다.

자신의 정원에 씨앗을 심은 사람은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나무가 흔들리지 않게 담장에 묶어두었고,
비가 많이 오면 그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위에
천막을 쳐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에 씨앗을 심은 사람은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도 나무가 그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단지 한 번씩 산에 올라갈 때면 그 나무를 쓰다듬어주며
"잘 자라다오. 나무야"라고 속삭였습니다.
자신이 그 나무를 늘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
일깨워 주었던 것입니다.

20년이 지났습니다.
정원에 있는 나무는 꽃을 피우기는 했지만, 지극히 작고 병약했고,
산에서 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푸른빛을 띤 튼튼한 나무로 자랐습니다.

- 박성철, '누구나 한 번쯤은 잊지 못할 사랑을 한다' 중에서 -



인간은 한 톨의 씨앗과 같습니다.
아픔과 시련 없이 거둔 성공은 모래성처럼 작고 병약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비바람과 폭풍우라는 시련을 피하지 않고 견뎌낸 후
거둔 성공은 크고 푸른빛을 띠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주어진 시련에 좌절하지 마시고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행복의 씨앗입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글쓴이 : 장성웅원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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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목동




한 왕자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한 목동을 발견하여 길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목동은 왕자에게 말했습니다.
"왕자님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남의 집 양을 치는 목동인데 양 떼를 놔두고 길을 안내할 수는 없습니다."

왕자는 일당의 수십 배를 줄 테니 다시 안내해달라고 말했지만,
목동은 그럴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참다못한 왕자는 목동에게 칼을 겨누며 말했습니다.
"길을 안내하지 않으면 여기서 너를 죽이겠다!"
하지만 목동은 단호한 표정으로 왕자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그러셔도 전 양들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말로는 안내해 드리지요.
저 산을 세 번 넘은 후에 서쪽으로 계곡을 따라 20분간 가면 길이 나옵니다."

왕자는 하는 수 없이 말해준 대로 힘들게 길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목동이 괘씸했습니다.
'감히, 내 간청을 거절하다니...'

몇 년 후, 왕자는 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인재를 고르려니 마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 한결같던 목동이 떠올랐습니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좋지만,
한결같이 곧은 성품은 보이는 사람이 훨씬 귀하다고 생각한 왕자는
목동을 불러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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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열 글자




① 천하보다 소중한 한 글자 : 나
②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는 두 글자 : 우리
③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글자 : 사랑해
④ 평화를 가져오는 네 글자 : 내 탓이오
⑤ 돈 안 드는 최고 동력 다섯 글자 : 정말 잘했어
⑥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드는 여섯 글자 : 우리 함께 해요
⑦ 뜻을 이룬 사람들의 일곱 글자 : 처음 그 마음으로
⑧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여덟 글자 : 그런데도 불구하고
⑨ 다시 한번 일어서게 하는 아홉 글자 : 지금도 늦지 않았단다
⑩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열 글자 :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을게



그거 아세요?
여러분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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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카레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20년 전, 가족들과 다툼으로 떨어져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와도 전혀 연락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남자에겐 형이 한 명, 여동생이 한 명 있었지만
그들과도 연락을 않고 살았던지라 최근까지도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을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망각'이라는 완벽한 감옥에 갇혀 계셨습니다.
처음에 남자는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지난 20년간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불효자에 대한
노여움이 지나쳐 연기하고 계시는가 보다 했습니다.

남자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시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활력이 넘치는 분이셨거든요.
그런데 그때 그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아들을 '아저씨'라 부르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
치매 노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20년 만에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저녁 메뉴는 어머님이 고집을 부려 준비한 카레였습니다.
어머니가 식사 중인 남자를 빤히 바라보더니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카레를 많이 좋아하시는가 봐.
우리 아들도 카레를 좋아해서 이것만 하면 두 그릇씩 먹었는데.."
어머니는 남자가 다 먹은 밥그릇에 다시 카레를 가득 담아 주셨습니다.

남자는 어렸을 때 카레를 좋아해서 수시로 어머니께 졸라대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치매인데도 그걸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남자는 가슴 속으로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어머니...불효자를 용서해주세요.'



영원할 것 같은 시간도 돌이켜보면 찰나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효도해야지...하지 마십시오.
부모님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길지 않은 인생,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마음껏 사랑하며 사십시오


출처 : 전국 학원가
글쓴이 : 장성웅원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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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갚은 소녀




2차대전 때 굶주림과 두려움에 떨면서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가난한 환경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성장했습니다.
특히 전쟁 중이라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한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음식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구호품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구호품으로 어려운 시절을 극복한 소녀는
훗날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성장한 오드리 헵번이었습니다.
그리고 1954년부터 꾸준히 기부에 참여한 그녀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 등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직접 찾아가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받았던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입니다.
나를 구해준 단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나는 정말 기쁩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글쓴이 : 장성웅원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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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어린이를 사랑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한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밤, 방정환 선생의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칼을 든 강도를 만난 선생은 차분히 말했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그냥 달라고 하면 되지, 무슨 칼까지 들이대고 그러시오.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주겠소."

너무도 부드럽고 친절한 방정환 선생의 말에 강도가 더 당황했습니다.
선생이 준 뭉칫돈을 주섬주섬 챙겨 나가려 하는 강도에게
방정환 선생이 다시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달라고 해서 줬으면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하지 않소."
"고..고맙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경찰에게 강도가 붙잡힌 것입니다.
방정환 선생 집으로 들어온 경찰과 강도를 본 선생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허허. 또 오셨네! 방금 준 돈을 벌써 다 쓰셨단 말이오."
그러자 경찰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자가 여기서 강도질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경찰의 말을 들은 방정환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강도가 아닙니다.
사정이 딱한 것 같아 내가 그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내가 준 돈을 받고 고맙다고 인사까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저자가 강도입니까."

방정환 선생의 말에 경찰은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강도를 풀어주었습니다.
경찰이 가고 나서 강도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던 방정환 선생.
특히 당시 소외당하는 어린이들에게 더욱 관심을 두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남의 조그만 허물을 꾸짖지 말고, 남의 비밀을 드러내지 말며,
남의 지난날 잘못을 생각하지 마라.
이 세 가지는 가히 덕을 기르며, 또한 해로움을 멀리할 것이다.
- 채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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