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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철학





오늘도 어김없이 빈 상자며 빈 병을 현관 앞에 내놓자마자
그 할머니가 다녀가십니다.
이 동네에 이사 와서 바로 오시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수년째 마주치는 할머니입니다.

처리하기 곤란한 재활용품을 치워주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지만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에게서 지저분함이 묻어올 것 같아
아이들에게 접근조차 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수년째 마주치면서 인사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빈 병, 빈 상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가
혹시나 다른 것을 요구할까 봐 하는 걱정이 앞서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초인종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그 할머니였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저는 앞뒤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불편한 기색부터 드러냈습니다.
"이거..."
할머니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에게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아까 가져간 상자 안에 이게 들어있더라고,
이 집 거 같아서.."

정신없이 청소하다 흘린 만원이 빈 상자 안으로 들어갔나 봅니다.
나는 고맙기도 하고 측은한 마음도 들어 할머니께 말했습니다.
"할머니 괜찮으니 그냥 쓰세요."

그러자 할머닌 먼지로 뒤덮인 손을 흔들며
"아냐 난 공짜는 싫어, 그냥 빈 상자만 팔면 충분해." 하시며
만원을 내 손에 쥐여주며 손수레를 끌고 떠나셨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누구보다 깨끗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하시는 할머니에게
그간 마음으로 쏟아부었던 온갖 생각들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보이는 것만 봅니다.
그리고 판단합니다.
들리는 이야기만 듣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하고,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까지 들어본 후에 판단하고 믿어야 합니다.
적어도 사람을 판단함에서는 그래야 합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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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





조선 숙종임금은 밤중에 미복 차림으로
백성의 사는 형편을 살피려 미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허름한 작은 오두막집 앞을 지나는데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양반들이 사는 기와집 동네를 지나면서도 듣지 못했던 웃음소리에
숙종은 어리둥절하여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오두막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 한 사발을 청했습니다.

그 사이 숙종은 문틈으로 방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방안에는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고 있었고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들은 짚을 고르고 있었으며
할머니는 빨래를 밟고 있었고, 부인은 옷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의 얼굴들이 모두가 어찌나 밝고 맑은지
도무지 근심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숙종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사는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밖에서 들으니 이곳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더이다."

주인은 희색을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빚도 갚아가며, 저축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웃음이 나는 가 봅니다."

궁궐로 돌아온 숙종은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빚도 갚고 저축도 한다는 말에 궁금증의 풀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숙종은 신하를 시켜 어젯밤 그 집에
감춰진 재물이라도 있는지 조사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집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숙종은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주인에게 전에 했던 말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 공양하는 것이 곧 빚을 갚는 것이고,
제가 늙어서 의지할 아이들을 키우니 이게 바로 저축이 아니겠습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우리는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요?
돈이 많으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생활이 편리해질 순 있겠지만
부자는 더 큰 부자를 부러워하고
더 큰 부자는 더욱더 큰 부자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진짜 부자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기적이라 여기며
때때로 좋은 음악을 듣고,
향기로운 꽃에 매혹되는 사람,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사소한 것으로 생각한 이것이 바로 행복이며,
어떤 부족함도 없는 마음의 '진짜 부자'인 것입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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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불치의 병을 앓게 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었습니다.
남자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두 사람 앞에 놓인 가혹한 운명을 탓하며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사랑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그녀는
이내 아픔을 털고, 현실과 당당히 맞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다니던 직장을 사직하고 그를 간호하는 데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병실에 함께 있던 환자들은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회복해서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병세가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한 달이라는 시한부를 판정받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알려져서
그 둘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이어졌고, 인터뷰 중간에
신문에 실을 사진을 찍자고 하자 여자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그녀를 잠시 밖으로 내보내고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사진은 찍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의아한 기자들은 왜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대답했습니다.

"제 여자 친구는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어요?
전 그녀가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행여 저와 찍은 사진으로 사람들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게 되면,
그래서 저와 사귀었던 명확한 과거가 생기게 되면,
그녀의 행복을 찾는 데 방해가 될 거에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두고서도 남겨질 연인을 도리어 걱정하고,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게 사랑, 아닐까요?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보세요.
지금 내 곁에 있는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사랑한다 말해보세요.
어쩌면 눈부신 여름날...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으로 넘쳐나지 않을까요.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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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감사





어느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농부가 무를 심었더니 농사가 어찌나 잘 됐는지
커다랗고 튼실한 무들을 많이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이 모든 것이 고을을 잘 다스려 주는 원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수확한 무 중 가장 크고 튼실한 것으로 골라 원님께 바쳤습니다.
원님은 농부의 진실 된 마음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다
마침 큰 황소 한 마리가 있어 이를 농부에게
보답의 뜻으로 주었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욕심 많던 한 농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착한 농부가 무를 바쳐 큰 황소를 얻었으니,
본인은 원님한테 황소를 바치면 더 귀한 것을 받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황소를 받은 원님은 그 보답으로 무엇을 줄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착한 농부가 가져다준 무를 주었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를 가지려고 온갖 욕심을 부립니다.
하지만 그 하나는 눈앞에 보이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하루는 어제보다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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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하지 않은 것





# 오늘의 명언
용서할 줄 알아야 사랑할 줄도 안다.
용서는 내면의 평화를 열어 주는 열쇠다.
용서하는 마음은 덕을 쌓는 일이다.
친구를 용서하는 것보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가장 나쁜 사람은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다.
– 토마스 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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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하지 않은 것





# 오늘의 명언
용서할 줄 알아야 사랑할 줄도 안다.
용서는 내면의 평화를 열어 주는 열쇠다.
용서하는 마음은 덕을 쌓는 일이다.
친구를 용서하는 것보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가장 나쁜 사람은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다.
– 토마스 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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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두 살이 되던 이른 봄,
엄마는 나와 오빠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당시 중학생인 오빠와 초등학생인 나를 아빠에게 부탁한다며 떠나신 엄마.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과 사진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엄마는 사진 속에서 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습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아니면 외로워서였을까?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아빠는 새엄마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씀을 우리 남매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타작이 시작되었고,
오빠는 어색하게 "엄마"라고 겨우 목소리를 냈지만,
난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부를 수 없었습니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으로 피멍이 들수록 난 입을 앙다물었습니다.
새엄마의 말림으로 인해 매타작은 끝이 났지만,
가슴엔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새엄마를 더 미워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 방에 있던 엄마 사진을 아빠가 버린다고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엄마 사진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미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새엄마는 분명 착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은
그 착함마저도 위선으로 보일 만큼 강렬해졌습니다.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

그해 가을 소풍날이었습니다.
학교 근처 계곡으로 소풍을 갔지만,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습니다.
소풍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 점심을 먹을 때,
계곡 아래쪽을 서성이고 있는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김밥 도시락이 들려있었습니다.

뒤늦게 저하고 같은 반 친구 엄마한테서
소풍이라는 소식을 듣고 도시락을 싸오신 모양이었습니다.
난 도시락을 건네받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 물에 쏟아버렸습니다.
뒤돌아 뛰어가다 돌아보니 새엄마는 손수건을 눈 아래 갖다 대고 있었습니다.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습니다.


*********************************************************


그렇게 증오와 미움 속에 중학 시절을 보내고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입 진학상담을 해야 했습니다.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인문고 진학을 원하셨지만,
난 산업체 학교를 고집하였습니다.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했습니다.
결국, 내 고집대로 산업체 학교에 원서를 냈고
12월이 끝나갈 무렵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더 모질게 결심했습니다.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학교 기숙사에 도착해서도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갈 무렵
옷 가방을 정리하는데 트렁크 가방 아래
곱게 포장된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분명 누군가 가방 속에 넣어놓은 비닐봉지.
봉투 속에는 양말과 속옷 그리고 핑크빛 내복 한 벌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지런한 글씨체로 쓴 편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편지지 안에는 아빠가 가져간 엄마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새엄마는 아빠 몰래 사진을 편지지에 넣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제껏 독하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 처음으로 집을 찾아가게 된 날이었습니다.
난 아빠, 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내복을 준비했습니다.
그 날은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있었습니다.
멀리서 새엄마가... 아니 엄마가 나와서 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엄마 손에 들려있는 빗자루 뒤에는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습니다.

'엄마.. 그동안 저 때문에 많이 속상하셨죠?
죄송해요. 이제부턴 이 내복처럼 따뜻하게 모실게요.'

어색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웅얼거리는 모습을 본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따뜻한 두 팔로 날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나의 편견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 기회 없이 스스로 차단하는 것은
어두운 작은 방에 자신을 가두어 점점 외롭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어찌 미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오늘 먼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어보시면 어떨까요.


#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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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부모님의 이혼으로 고모네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새엄마네 집으로 보내졌고,
9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 중학교 3학년 때 쫓겨났습니다.

또다시 갈 곳이 없어진 저는 친척 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척들은 제가 나타나자 회의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쟤를 맡을 거냐..'

아무도 나서지 않자 보육원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아직도 그 말은 정말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던 중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나서서 저를 맡으시기로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노인연금만으로 생활하셨기 때문에
점심은 노인정에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정 공사로 문을 닫은 날이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에서 쌀을 가져왔는데,
집에 전기가 없어 밥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은행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와 쌀을 불려 먹으면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는
또다시 생계를 위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턱이 부러졌는데 수술비가 200만 원이나 나왔습니다.
제 전 재산은 50만 원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수술하였습니다.

하지만, 수술비가 없는 것보다 더 서러운 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 홀로 누워있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전 병원에서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가 할머니에게 끝까지 짐만 될 것 같았습니다.
퇴원하면 당장 공부를 하자고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노인정에 매일 오시던 할머니 친구분이 오시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댁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 안색이 안 좋아 보였고 어깨는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가니까 뼈가 다 부러져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참았냐고 할머니께 여쭤보니
병원비가 너무도 많이 나올 것 같아 참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다시 결심했습니다.
의대에 진학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의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 후, 막노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12시간 막노동이 끝나면 정말 10분도 앉아있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렇게 살기는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처음에는 10분, 20분.. 이렇게 시간을 늘려갔더니
나중엔 하루 6시간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힘들어 수백 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하늘이 정말 존재한다면 도와줄 거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게 3년, 드디어 의대에 합격했습니다.
할머니께 제일 먼저 말씀드리니, 정말 기특해하셨습니다.
더 행복한 건 저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에게도
제 합격이 힘이 될 거란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힘든 일이 더 많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이런 경험들에 항상 감사합니다.

한겨울, 할머니를 모시고 노인정에 살았을 때,
쌀을 불려서 먹으며 끼니를 때울 때,
이런 모든 고생과 경험이 다 귀한 재산이 되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저에게 더 힘든 일이 닥치는 경우라도
잘 살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벼랑 끝에 서 있을 누군가를 잡아줄 힘이 돼주고,
우리 할머니처럼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돕는
그런 멋진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글쓴이 : 학원운영리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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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습





옛날 어느 고을 원님이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무꾼으로 변장하고 여기저기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부잣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원님은 대문이 열리자 말했습니다.

"지나가는 나무꾼입니다.
목이 말라서 그런데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부자 영감은 초라한 행색의 나무꾼을 보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인에게 명령했습니다.
"이 녀석이 목이 마르다는데 물을 바가지로 먹여주어라."
하인은 영감이 시키는 대로 물을 바가지로 떠 와
나무꾼에게 들이부었습니다.

원님은 갑자기 당한 봉변에 당황하고 있는데 부자 영감이 다시 소리칩니다.
"아직 목이 마른가 보구나. 한 바가지 더 안겨 주어라!"
하인은 물 한 바가지를 더 가지고 와 나무꾼에게 들이부었습니다.

동헌으로 돌아온 원님은 관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부잣집으로 향했습니다.
부자 영감은 원님을 보자 맨발로 달려 나와 귀하게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진수성찬을 차려 내왔습니다.
원님은 음식상 앞에 앉아 술과 음식을 자신의 옷에 들이부었습니다.
원님의 행동에 부자 영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원님이 말했습니다.
"이 술과 음식은 사람을 보고 차려온 것이 아니고
옷을 보고 차려온 것이니 당연히 옷이 먹어야 하지 않겠소?"
그 말에 놀란 부자 영감이 원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전 찾아왔던 바로 그 나무꾼이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첫인상에서는 겉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의 외모, 재력 등.
여기에 한 가지만 유념하면 됩니다.
'성급한 판단'

성급한 판단만 하지 않고
천천히 그 사람의 꾸미지 않은 내면의 모습을
살펴보는 식견을 갖는다면
사람을 잘못 보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첫인상에 좌우되지 마라.
거짓은 늘 앞서 오는 법이고, 진실은 뒤따르는 법이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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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실패





한 나라의 군대가 전쟁에 참패를 당하여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 명의 패잔병들이 모두 숲 속으로 도망쳤는데,
그중에는 군대를 이끌던 장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군은 전쟁에 참패한 것이 수치스러워 칼을 빼 들어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동굴 어귀에서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치는 것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거미는 바람으로 인해 6번을 연거푸 실패했으나
7번째에 가서는 드디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장군은 무언가 깨달은 듯이 벌떡 일어나
'난 겨우 한 번 실패했을 뿐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후 다시 참가한 전쟁터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실패했을 때,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깊은 좌절에 빠집니다.
두 번째 실패했을 때,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의 슬픔을 느끼지만, 처음보단 낫습니다.
세 번째 실패했을 때,
견디긴 어렵지만, 조금만 더 해보면이란 희망도 조금 생깁니다.
그렇게 네 번, 다섯 번...그러다 보면 어느새 성공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라는 말, 잊지 마세요.
실패가 있어야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성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아무리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항상 또 다른 기회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실패라 부르는 것은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한 채로 있는 것이다.
- 메리 픽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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