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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운명을 좌우한다





미국의 '캐스랠리'라는 여성은 노래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지만
항상 밤무대에서만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외모는 유명 가수들과 견줄 만큼 아름답지 못했으며,
노래를 부를 때 뻐드렁니를 감추려고 윗입술을 오므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쉽게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노래를 들은 한 작곡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당신이 노래하는 것을 유의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인가 감추려는 것이 있어요.
아마 뻐드렁니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녀는 당황해서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작곡가는 오히려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대체 뻐드렁니가 어떻단 말이에요.
이제 더이상 감추려고 하지 말아요.
당신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청중들은 당신을 더 좋아할 겁니다."

용기를 얻는 그녀는 청중을 생각하며 자기의 약점을 잊고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신체적인 장애,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열심히 극복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작아지게 하고 큰일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의 생각에 용기를 조금만 보탠다면
분명 큰일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나쁜 일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
여러분이 온종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다.
- 조셉 머피 -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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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독수리





온몸에 난 상처로 고민하고 아파하던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낭떠러지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독수리는 여태껏 입은 자신의 상처 때문에
더 이상은 높이 날 수가 없다는 시름에 빠졌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대장 독수리가
재빠르게 날아와 상처 난 독수리에게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하려고 하느냐?"

그러자 아파하던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난 늘 상처만 입고 살아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대장 독수리는 갑자기 자신의 날개를 펼치더니 이야기했습니다.
그 날개에는 오래돼 보이는 많은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었습니다.

"나의 몸을 한 번 보렴.
지금은 내가 대장 독수리지만, 나 또한 수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왔지.
여기는 사람들의 총에 맞은 상처,
여기는 다른 독수리에게 습격받은 상처,
또 여기는 나뭇가지에 찢긴 상처란다."

그 외에도 수 없는 상처 자국이 있는
대장 독수리의 날개를 보자 아파하던 독수리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대장 독수리는 단호한 말투로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몸에 새겨진 상처일 뿐이다.
나의 마음엔 더 수많은 상처 자국이 새겨져 있단다.
그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었지.
상처 없는 독수리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독수리일 뿐이다."

- 박성철 '희망의 지혜를 주는 이야기' 중에서 -



큰 선택과 결단을 지혜롭게 해내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고통과 인내의 과정입니다.
연단의 시간을 피하거나 포기한다면
우리에게 내일을 살아갈 힘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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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봉사활동





저희 집은 제가 고등학생 때만 해도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온 나라를 휩쓸던 1997년 IMF의 태풍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공장을 결국 파산에 이르렀고,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파출부로 일하셔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채권자들을 피해 노숙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힘겹던 시간이 지나고 저는 가정을 꾸렸고,
지금은 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노숙인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십니다.
때로는 저희 아이를 데리고 자원봉사 일을 하시는데
혹여, 비위생적인 환경이 아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어머니는 당신이 자원봉사하시는 시설에
저를 데려가더니 구석진 자리에 저를 앉히시고,
식판에 밥을 떠 주시면서 말했습니다.

"거기가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식사했던 자리다.
사업이 망하니까 친척도, 친구도 모두 네 아버지를 버렸는데
유일하게 네 아버지를 받아준 곳이 여기야.
난 여기서 밥을 먹는 이 사람들이 더럽고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드는구나."

전 울컥하는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어머니의 자원봉사에 한마디도 불만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가끔 어머니를 따라서
아내와 함께 자원봉사를 하러 나가곤 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내면에 어느 순간부터 생겨난
편견과 부정적인 시각 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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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고민과 어떻게 맞설 것인가?





고민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게 없습니다.
언뜻 비슷해 보여도 사람마다 각자 다릅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걱정거리의 종류와 정도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니
그런 일로 고민하지 말라고 덮어놓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런저런 불길한 상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상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 '고민하지 않는다' 중에서 –



누구에게나 고민과 걱정이 있습니다.
고민을 처리하는 방식, 고민에 얽매이는 시간 정도만 다를 뿐이지
누구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삽니다.

고민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눈에는 하찮아 보이는 것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당장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중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지금 나를 괴롭히는 이 큰 고민이
다른 사람에게는 정말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안의 고민과 어떻게 맞설 것인가?"
결론은 하나입니다.

집착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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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역사상 위대한 여자 성악가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미국의 콘트랄토(여성 최저음 영역의 가수) 마리안 앤더슨.

그녀는 가난한 가정 형편과 흑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1925년 28세의 나이에 '뉴욕 필하모닉' 주최 신인 콩쿠르에서
많은 경쟁자를 뒤로하고 1등으로 합격하였습니다.

1935년 흑인 최초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섰고
이 공연을 본 거장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한 세기에 한 번 나올만한 소리를 가졌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 워싱턴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진행한
무료 야외 연주회에서는 7만 5천여 명의 청중이 몰릴 정도로
그녀는 많은이들에게 유명해졌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서는 무대마다 빠짐없이 참석해 취재했던
한 기자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당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기자는 그녀가 공연을 마친 뒤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던
모든 순간을 함께했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습니다.
"제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늙으신 어머니께
이젠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때였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은 가난했고 차별당했지만
꿈을 향한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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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훈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조선 시대 유명한 재상인 황희 정승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평소 아랫사람들에게는 자상하고 너그러움으로 대했던 그였지만,
유독 아들들에게는 언제나 엄격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의 아들이 큰 골칫거리였는데,
언제나 방탕한 짓을 좋아해 외출만 하면 고주망태가 되어
늦은 시간에 귀가하곤 했습니다.

아들의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황희 정승이
하루는, 관복을 차려입고 대문까지 나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들어오는 것입니까?"

그러자 아들은 깜짝 놀라며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라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집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아니라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나 마찬가지가 되지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은 예의인즉,
지금 저는 손님을 맞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은 들은 아들은 통곡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부모의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진심 어린 올바른 행동들이
자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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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이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말을 타고 길을 가던 한 신사가
재목을 운반하기 위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군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편안히 앉아 구경만 하는 상사가 있었습니다.

신사가 그 상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같이 일을 하지 않으십니까?"

상사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졸병이 아니고 명령을 하는 상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자 신사는 말에서 내려 윗옷을 벗어 놓고
병사들과 함께 재목을 운반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사는 한참 동안 작업을 했고 많은 땀을 흘린 뒤에야
재목을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신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상사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목재를 운반할 일이 있거든 총사령관을 부르십시오."

그 신사가 유유히 자리를 떠나갈 때 즈음.
상사와 병사들은 그제야 그 신사가 조지 워싱턴 장군임을 알았습니다.



권위나 지위는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먼저 섬기는 겸손한 자에게 리더십의 기회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출처 : 전국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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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용서합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2년 6월 당시 9살 소녀였던 킴 푹은
동네 근처의 한 사찰에서 가족들과 함께 숨어 있다가
살상력이 큰 화염 무기 '네이팜 폭탄'의 폭격에 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당시 온몸에 화상을 입은 킴 푹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거리를 내달렸고,
이 극적인 모습이 AP통신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히게 됐습니다.
'네이팜 소녀'로 알려진 이 사진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1996년 워싱턴에서 열린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
킴 푹 씨가 초청돼 연설하게 되었습니다.

연설에서 그녀는
"만약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를 용서할 것이다."라며 놀라운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랍게도 마침 그 자리에
폭탄을 투하했던 비행기 조종사 '죤 머플러'가 참석해 있었습니다.
그녀의 연설을 들은 그는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 조종사입니다.
저의 오판으로 고통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 일로 인해 저는 그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러자 킴 푹 여인은 말했습니다.
"용서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용서를 빌고 진심으로 용서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감격해
눈물을 훔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기 힘들 때가 있지요.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의 상처는 결코 나을 수 없습니다.
먼저 용서할 때 평안해질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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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





뉴욕 리버티 섬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프랑스가 미국이 독립된 지 100주년이 되던 1886년에 선물한 이것은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의 작품입니다.

바르톨디는 대규모 공공 기념물과 거대 조각들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었는데
프랑스 정부가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물 디자인을 공모하자
자유의 여신상 디자인을 출품해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시작할 때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여신상의 얼굴을 누구를 모델로 삼아 조각할지가 문제였습니다.
바르톨디는 많은 고심 끝에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조각을 시작했고,
완성하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얼굴은
정치가의 위풍당당한 얼굴이나, 유명인의 화려한 얼굴이 아닌
수수하고 온화한 미소가 있는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젊어서도, 나이 들어서도
누구에게나 내면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당신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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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비켜 주십시오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 방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
그가 인도를 정복하기 위해 길을 가던 중
대표적인 금욕의 그리스 철학자로 소문나있던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자신의 집에서 햇볕을 쬐며 휴식을 즐기고 있던 디오게네스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말했습니다.

"난 천하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다.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보아라"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금만 비켜 주십시오.
당신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삶에는 감사 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침을 밝혀주는 태양이 있고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어 충분합니다.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욕심을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열린다.
- 에피쿠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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