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지기





겨울 동안 기르고 수확한 보리가
어느덧 바닥을 보이려 합니다.
이제 곧 다가올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빨리 모내기를 마쳐야 하지만,
메마른 땅에는 봄이 되어도 비가 오지 않고
논바닥은 쩍쩍 갈라지기만 합니다.

가족의 배고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농부는
말라비틀어지는 논에 계속 괭이질을 합니다.
먼지가 풀풀 나도록 마른논을 갈고 또 갑니다.
괭이를 휘두르는 농부의 손이 부르트고
쏟아지는 땡볕에 농부의 얼굴에 주름이
더욱 깊어집니다.

누가 봐도 농부의 행동은 쓸모없어 보였습니다.
물도 없는 논을 힘들게 파헤쳐 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농부가 피 같은 땀을 뿌려 가며 갈아놓은
논은 마침내 먼지처럼 고운 가루가 됩니다.
그러다 천둥소리가 나며 비가 쏟아져 내리면,
온 식구가 뒤늦은 모를 심었습니다.

천둥소리가 나야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천둥지기'라 했습니다.

산골짜기 같은 데에 있어서 물길이 닿지 않아,
비가 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평평하고 기름진 땅은 대지주들이 차지한 경우가 많았고,
가난한 농부들은 소작을 부쳐 먹거나
물길이 닿지 않는 천둥지기에서
벼를 길러야 했습니다.

먼지처럼 곱게 갈린 논에 비가 오면
논은 이내 곤죽이 되는데,
그러면 뒤늦게 논을 갈고 할 것도 없이
모를 꽂아나가기만 하면 됐습니다.

농부가 마른논을 갈고 또 갈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때로는 절대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일에
한없이 매달려 발버둥 쳐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노력했던 일들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우리들 삶에 천둥이 내려치는 그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189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보어전쟁에
참전 중인 한 영국 장교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하지만 수용소 벽을 뚫고 탈출했으며
남아공 내의 영국인 이주자의 도움으로
위험지역을 벗어 놨습니다.

그리고 중립지대인 포르투갈령 모잠비크까지
무려 480km를 걸어가서 완전히
탈출에 성공합니다.

이 장교는 어린 시절 말더듬이였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서고 어느 정도 철이 들 무렵
이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집중력을 길렀고 오랜 시간 노력하여
말을 더듬는 습관도 극복했습니다.

청년이 되고 꿈에 그리던 군인이 되기 위해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말더듬이뿐만 아니라 집중력까지 약하던 그는
성적이 좋지 않아 사관학교에 2번이나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고
3번째는 당당하게 합격했습니다.

인생의 많은 부문에서 포기할 줄 모르는
불굴의 의지를 관철한 이 사람은
영국의 61대, 63대 총리를 역임한
'윈스턴 처칠'입니다.

처칠이 2차 대전 당시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할 때였습니다.
처칠은 청중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힘 있는 목소리로
짧은 한 문장을 외쳤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연설이 끝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청중에게
한참 뒤 그는 소리를 높여 다시 외쳤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어리둥절해하는 청중들에게
처칠은 다시 소리쳤습니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때야 청중들은 처칠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업적과 화려한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 환호하고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결과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결과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외면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 결과를 위해 더 큰 노력을
한 것인지 모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분명 당신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서로 자기 돈이 아니라는 사람





조선 전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홍 씨라는 사람이
큰 부자가 되어 한양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다란 기와집을 사서
한양에서 살게 된 홍 씨는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대청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무너지려는 것을 보고
수리를 하였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로운 기둥을 세우기 위해 헌 기둥을 뽑아낸 자리에서
어찌 된 영문인지 은(銀) 3000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놀란 홍 씨는 급히 수소문하여
집의 이전 주인인 이 씨를 찾았습니다.
원래 대대로 부자였던 이 씨는 가세가 기울어
홍 씨에게 집을 팔고 검소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홍 씨는 이 씨를 찾아가 은전이 든
항아리를 주려고 했지만, 이 씨가
사양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집을 팔면서 그 집의
기왓장이나 주춧돌까지 몽땅 당신에게
넘겨 드린 것이니, 그 항아리는
이제 당신 것입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홍 씨와 이 씨의 사연이
관청에 전해지자, 관청에서는 조정에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교서를 내렸습니다.

'나의 백성 가운데 이토록 어진 자가 있으니,
누가 오늘날 사람이 옛사람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그리고는 은전을 반씩 나눠 가지게 한 뒤,
두 사람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을 보면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그런 본성을 억누르고,
심지어 자신의 것이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큰 재물을 보고도 양보하고,
더 합당한 주인을 찾으려 하는 행동은
크게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





어느 마을에 400년이 넘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목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무는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수십 차례의 산불의 위험도 있었고,
자그마치 14번이나 벼락을 맞는
고초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그 많은 위험 속에서도
긴 시간을 꿋꿋이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굳건한 나무가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 동안 당당히
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 강대한 거목이 말라죽었습니다.
당황한 사람들이 알아낸 원인은
작은 딱정벌레였습니다.

나무속 줄기를 갉아먹는 딱정벌레들 때문에
결국 나무 속살에 상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거목에 비한다면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상처들은
조금씩 모이면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고 해서 하찮게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이 훗날 당신에게 매우 크고 소중한 것을
부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최악의 환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은
일 년 동안 비가 내리는 날이 열흘 정도입니다.
그리고 연평균 강수량이 해안에는 13㎜,
단층애 부근은 50㎜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입니다.

새벽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고,
한낮의 미친 듯한 열기가 춤을 출 때는 40도,
지표면의 온도는 70도까지 올라가는
척박한 곳입니다.

수천만 년 동안 이런 급격한 온도차로 인해
나무는 물론 바위까지 가루가 된
나미브 사막을 원주민들은 '아무것도 없는 땅'
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엄지손톱 크기의 '거저리'라는
딱정벌레는 이 혹독한 나미브 사막에서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곤충은 해가 뜨기 전에
모래 밖으로 나와서 300m가량의
모래언덕 정상을 매일 올라갑니다.
작은 딱정벌레에게 300m는 사람으로 치면
에베레스트의 두 배나 되는 높이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올라간 거저리는
경사면의 가장 높은 끝에 다다르면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물구나무를 서서
등을 활짝 폅니다.

이렇게 몸을 아래로 숙이고 몸을 펼치면
등에 있는 돌기에 안개의 수증기가
조금씩 달라붙어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커진 물방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곤충의 등을 타고 흘러 내려오면 마침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나미브 사막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작은 딱정벌레에게도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가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너무도 열악하여 탓만 하고,
이만큼 했으면 최선을 다한 거라고 쉽게 포기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세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경우라도,
분명히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라면왕





노르웨이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라면왕이 태어난 나라'로 알고 있는데
'라면은 Mr. Lee'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한국 출신 사업가 이철호 씨가 만든 'Mr. Lee 라면'이
한때는 노르웨이 라면시장의 무려 95%를
차지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폭격으로 크게 다쳐서
노르웨이 야전병원을 통해 노르웨이로 건너가
치료를 받은 이철호 씨는 한국 최초의
노르웨이 이주자였다고 합니다.

이역만리 낯선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철호 씨는 많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화장실 청소부, 벨보이, 단역배우 등을 하며
배고플 때는 새 모이를 물에 불려 먹었고,
그나마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남은 음식을
먹을 때는 행복했다고 합니다.

영양실조를 견디며 겨우 모은 돈으로
시작한 사업은 계속 실패와 좌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야심 차게 시작한 라면 사업도
처음에는 맵고 짠맛이 강한 한국 라면이
노르웨이 사람들 입맛에 맞지 않아
3년이나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노력과 연구 끝에 노르웨이의
입맛을 사로잡을 라면 수프를 개발하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Mr. Lee 라면'은
노르웨이 라면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성공담은 노르웨이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였고
2004년에는 '자랑스러운 노르웨이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8년 81세의 나이로 작고한
이철호 씨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여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리면 실패한 그곳이
당신의 영원한 종착점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한다면
그곳은 당신의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지금 실패한 그곳은 종착점이 아닙니다.
당신이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일 뿐입니다.


어밀리아 에어하트





1928년 '어밀리아 에어하트'라는
여성 파일럿에게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그녀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여성 파일럿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영광 속에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둘러싸였고
언론의 집중 취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만이었습니다.
당시 미 공군의 주도로 진행된 대서양 횡단은
실제로는 공군의 베테랑 남성 파일럿들 중심으로
비행이 이루어졌고, 그녀의 활동은 마스코트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요리와 바느질,
순종과 예의 바른 행동을 강요했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승마, 농구, 수학과
발명을 좋아하던 적극적인 여성이었고,
의학을 공부해 1차 세계대전에서는 의무병으로 나선
용감한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1928년 8월,
북아메리카 횡단비행에 성공한 첫 여성 파일럿이라는
공식 칭호를 스스로 따내고, 후회가 남았던
대서양 횡단마저 자력으로 14시간 무착륙 비행으로
무사히 성공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 여성 파일럿으로서의
위상을 유감없이 선보인 어밀리아 에어하트는
1937년 47,000km 거리를 비행하는
세계 일주 비행 도중 실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실종 이후 더 유명해졌습니다.
바로 그녀가 세상에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삶에서 해도 되는 것, 안 되는 것,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맹모삼천지교





맹자가 아직 어렸을 때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공부와 성공을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아들이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기를 바라고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더니 어린 맹자가
주변의 곡소리를 흉내 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시장 근처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인들의 흥정하는 모습을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맹자가 주변의 학구적인 분위기에 어울려
공부에 전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자식을
최고의 학자로 길러낸 현명한 맹자의 어머니가
아무 생각 없이, 공동묘지나 시장으로
이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현명한 맹모는 맹자가 학문을 닦는 데 앞서
먼저 인생의 죽음에 관해서 공부하고
삶의 엄숙함과 진지함을 알게 하기 위해
묘지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한 후
시장으로 이사를 하여서 시장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삶과 죽음의 바른 목적을 알게 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학문에 정진하도록
했다는 주장입니다.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대학교수가 매주 화요일마다 한 제자와
만나 인생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묶은 책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입니다.
여기서 교수는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모든 사람은 삶과 죽음을 지나갑니다.
지금 우리는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참을 인(忍)' 의미





여러 명의 제자를 거느린 스승이 있었는데
그중 골칫덩이 제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 현명하고 이해력이 높아
스승의 가르침을 금세 습득하는 뛰어난
제자였지만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금방 흥분하고 자제를 하지 못해
다른 사람과 주먹 다툼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고민하던 스승은 어느 날 그 제자를 불러
나무 상자 하나를 제자에게 맡겼습니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은 오래전부터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도자기가 들어있다.
너는 내가 누구보다 믿고 아끼는 수제자이니
한 달간 그 도자기 상자를 맡기려고 한다.
이 한 달 동안 그 도자기 상자를 절대로
몸에서 때어놔서는 아니 될 것이야."

존경하는 스승의 보물을 보관하게 된 제자는
한 달 후 다시 도자기를 돌려주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은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도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참았던 것 같은데
그 연유가 무엇이냐?"

"혹시 싸움이 벌어지면 품속에 보관했던
스승님의 보물이 깨질까 두려워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참을 인(忍)'을 종이에
크게 써서 주며 말했습니다.

"칼날 인(刃) 자 밑에 마음 심(心) 자가 놓여있다.
너의 마음속에는 이 도자기를 보관한 상자보다
훨씬 무겁고 날카로운 칼날이 있다.
이러고도 네가 깨닫지 못한다면 그 칼날이
너를 심하게 찌를 날이 올 것이 분명하니
내 심히 두렵구나."

스승의 깊은 사랑과 진의를 깨달은 제자는
'참을 인(忍)'이 써진 종이를 항상 몸에 지니고
경거망동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더 퍼스트 펭귄





무리를 지은 펭귄이 빙판 위를 걸어갑니다.
더 나은 서식 장소를 위해 옮겨 다니는
대규모의 펭귄 무리는 남극에서는
아주 흔한 모습입니다.

그 펭귄 무리들이 빙판 끝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바다로 헤엄을 쳐야만 건너편 빙판으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바닷속에는 범고래나 바다표범 등
펭귄을 위협하는 천적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러나 여기를 지나가지 않으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땅으로 갈 수 없습니다.

다른 펭귄들이 주저할 때 최초로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이 있습니다.

연약한 펭귄들은 무리를 지어 자신들을 보호하지만
이 첫 펭귄은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
무방비상태가 됩니다.

바닷속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모든 펭귄 무리가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목표를 위해
과감하게 바다에 뛰어듭니다.

이 최초의 펭귄이 먼저 용기를 내어 뛰어들면
다른 펭귄도 줄줄이 바다로 뛰어듭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선구자 역할을 하는
이 펭귄을 '더 퍼스트 펭귄'이라고
사람들은 부릅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이라도
누구나 앞을 볼 수 없게 눈을 가리고 있으면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이라는 것은
무섭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시작해보세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딛는 그 한 걸음이
어쩌면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장 성웅원장 생각.....어느새 학원가에만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만큼  경험과  노련미가


쌓였지만  이제 학원을  그만두어야하나...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늘 서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같지 않은  학원시장 /아이들 


학부모들/  그리고 개인적인  체력과  열정부족등등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자금의


상황들을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건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고


스스로가 해결해나가야하는 


인간의 숙명이며 운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데까지는  버티며


누군가에겐  힘이되어주고 


등불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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