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진 기업들의 경영 화두 가운데 하나가 즐겁게 일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구성원들이 즐겁게 일할 때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직의 구축 방안을 살펴본다.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한 히딩크 감독의 팀 운영 방식은 기업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그의 소신 있는 리더십, 실력 위주의 인사, 원칙과 규율의 중시, 전문 지식의 활용 등과 같은 운영 원칙은 경영자들에게 좋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팀 운영 방식 중 하나가 선수들이 보다 즐겁게 훈련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지시에 따르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경기를 즐길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반복적인 지루한 훈련 내용에 게임 형식을 도입하여 선수들이 재미있게 훈련에 임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훈련 방식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그의 훈련 방식은 월드컵 4강이라는 탁월한 성과를 이루었다.
즐겁게 일한다는 것은 회사 성과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경영 성적표는 매우 화려하다. 포춘지가 선정한 1998년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 미국 Top 5 내에 드는 대형 항공사, 고객 서비스 분야 최우수 기업, 26년간 매년 흑자 달성 기록 등이 성적표의 내용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중요한 경영 철학은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인 기존 관념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이색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즐거운 조직 문화만이 회사의 성과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처럼 즐겁게 일하는 것은 성과 제고와 상관 관계가 높다는 것이 인식되면서, 많은 기업들은 즐거운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최근 기업 경영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슈 중 하나가 ‘Fun 경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
즐겁게 일하는 조직의 중요성
즐겁게 일하는 조직이 경영의 화두가 되고 있는 배경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조직 구성원의 세대 교체에 따른 영향이다. 소위 N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젊은 사원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선호하는 문화는 기성 세대들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N세대의 사원들은 통제나 관리보다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에너지를 쏟아 붓지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또한 능력에 대한 인정 및 보상을 요구하고 일만큼 휴식도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의 취미나 특기를 살리는 과외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를 고려할 때, N세대 사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기업들은 구성원들이 즐겁게 일하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갖출 필요가 있다.
둘째, 환경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업무가 다양화 됨에 따른 영향이다. 변화가 빠를수록, 구성원들은 더 많이 학습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이로 인해 과중한 정신적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두뇌를 활용하는 지식 근로자의 성과에 매우 치명적이다. 이러한 정신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도 즐거운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즐거운 조직 문화는 구성원들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또한 즐거운 조직 문화는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업무의 지루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램으로써 조직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셋째, 평생 직장의 개념이 약화되면서 구성원들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낮아지고 있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핵심 인재의 이탈 방지나 구성원들의 충성도 제고는 금전적 인센티브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구성원들이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즐겁게 일하는 조직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즐거움의 실체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 첫번째는 직장 분위기 및 환경 등의 편안함과 흥미 있는 이벤트를 제공하는 외적 즐거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내적 즐거움으로 이는 업무 만족 및 성취감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외적 즐거움과 내적 즐거움의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외적 즐거움의 제공
외적 즐거움은 구성원끼리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대표적으로 게임과 같은 기발한 이벤트 추진을 통해 제공된다. 많은 기업들은 구성원들에게 외적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LG 전자가 숫자판을 활용하여 화살이 꽂힌 번호와 사번의 뒷번호가 일치하는 경우 특별 휴가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거나, 여름 방학인 8월에 직원 가족 초청 행사를 가지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외적 즐거움의 제공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조치들을 통해 단기간 내에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구성원들의 참여를 쉽게 유도할 수 있으며, 홍보 효과가 크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외적 즐거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첫째,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실제 일에 대한 즐거움이 커지지 않는다. 조직의 분위기가 재미있다고 해서 본인이 맡은 일의 즐거움 즉,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그 효과가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벤트의 효과는 단기적이며 이벤트가 반복됨에 따라 그 한계 효용의 크기도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 사내 이벤트 추진 등이 잠깐의 재미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조직의 성과 향상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조직 내 근본적인 제도의 변화 없이 단지 피상적인 이벤트만 연다고 해서 조직의 성과가 향상되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자칫 잘못하면 외적 즐거움만 제공하는 행위들은 조직의 분위기를 흐트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조직의 성과와는 연계되지 않은 채 놀이 문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치만 높이게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이벤트를 중단하면, 구성원들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불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벤트의 효용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이벤트 기획 및 실행에 드는 비용을 계속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즐겁게 일하는 조직 문화 구축을 시도하고 있으나 잘 안되는 기업들이 있다면, 주로 외적 즐거움 제공에만 치우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속적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직을 구축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의 내적 즐거움도 같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내적 즐거움의 제공
업무 외적인 측면에서 아무리 자유롭고 재미있는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내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조직 성과 제고로 연결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유념해야 한다.
●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라
구성원들은 조직 내에서 업무를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기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내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조직은 가능한 한 그들의 가치나 목표 또는 희망 업무를 고려하여 인력을 배치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신입 사원 입사시 그들의 전공과 목표, 희망 부서 등을 고려하여 배치하는 데에는 신경을 쓴다. 그러나 그 이후 구성원 개인의 가치와 목표, 희망 업무 등을 고려하여 원하는 업무로 재배치하는 모습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한번 발을 담그면 다른 업무로의 전환이 쉽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관심 업무가 변경되거나 현 업무에서 흥미를 잃어도 새로운 업무를 해볼 기회가 좀처럼 없다. 구성원들에게 일을 통한 자아실현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별 경력관리를 심도 있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LG전자의 한 사업본부는 모든 구성원들이 ‘미래 설계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개인의 신상 정보와 경험 직무, 업무 성과뿐만 아니라 개인의 비전, 근무하고 싶은 부서, 받고 싶은 교육, 애로 사항 등이 적혀있다. ‘미래 설계서’는 인사부서와 상사가 공유함으로써 구성원이 희망하는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인력 배치의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Sony는 신규 프로젝트 수행자나 기존 핵심 업무 수행자의 결원 시 사내 공모에 의한 인재 선발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이 제도를 통해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개인의 니즈나 희망을 반영하여 직무를 재배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설사 직속 상사가 반대하더라도 선발된 당사자가 원하면 희망 직무로 재배치 함으로써 구성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 구성원들을 존중하라
구성원들이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는 본인 스스로가 회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이다. 최근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직업 선택 동기의 Best 3는 급여가 아니라 잠재성, 존경심, 만족감이라고 한다. 따라서 업무의 즐거움은 조직 내에서 개인이 인간으로서 존중 받고 있으며,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암묵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는 느낌 및 확신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
일례로 프루덴셜 보험사는 인사 부서원을 대상으로 하는 ‘ACES(Administrative Role, Change Agent, Employee Champion, Strategic Partner)’상을 수여한다. 이때 수상자를 선정한 위원들은 ‘왜 그 사람이 그 상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는 광경을 비디오로 찍어 전 세계 1,000여명의 인사 담당자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수상자는 자신의 성과를 전사적으로 인정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미 교통부에서 정시이착륙, 수화물 분실 건수, 고객들의 불만 접수 상황 등을 기준으로 우수 항공사를 선정하여 수여하는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상을 5년 연속으로 받았다. 이 회사는 모든 구성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트리플 크라운 원(Triple Crown one)’이라고 명명된 비행기를 취항시켰다. 그 비행기의 내부에는 2만 4,000여명에 달하는 전 종업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 같은 구성원의 노고와 성과에 대해 기업이 적절히 인정하고 보상해줌으로써 구성원 개개인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즐겁게 일하는 조직의 중요한 요인이다.
● 구성원의 역량을 개발시켜라
구성원들은 자기 분야에서 역량을 개발하고 주위 동료들에게 전파함으로써도 업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공자가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말했듯이, 구성원은 학습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학습이 없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그들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구성원들은 자부심을 상실하고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전파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도 신바람 나는 직장 만들기의 핵심 요인이다.
2000년 경제 전문지 포춘에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로 선정된 컨테이너 스토어는 1인당 교육 시간이 연 135시간이나 된다. 또한 동사는 ‘검비(Gumby)’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구성원들 가운데 가장 역량이 뛰어난 멤버를 선정하여 그들의 일상 업무를 줄여주고 대신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 직원에게 전파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와 더불어 회사는 이들을 신뢰하고, 그들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율권도 부여하며, 성과에 대한 보상도 제공하고 있다.
신뢰 구축이 우선되어야
회사와 구성원들간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구성원들은 회사의 의도를 불신하게 되고, 회사 또한 구성원들에게 업무를 자율적으로 맡기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신뢰 없이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즐겁게 일하는 조직 구축의 모든 노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켜 구성원들은 회사의 경영에 대해, 경영자들은 구성원의 의식에 대해 서로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에 대해서 알고 이해하는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신뢰가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없어야 신뢰 관계가 조성될 수 있다. 기업은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성장시킨다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 주고, 구성원들 역시 기업의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구성원과 기업간의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직을 구축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주말을 기다리며 주어진 업무만 수동적으로 수행하다가, 주말이 되면 ‘T.G.I.F.(Thanks God It’s Friday : 하느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주말입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며 사무실을 훌쩍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출처) LG경제연구원 / 박지원 / http://www.lgeri.com